다시 어제 쓴 눈 위로 눈 날린 새벽.
하지만 볕이 좋아 곧 녹았다.
달골에 올려져 있던 차도 내릴 수 있었다.
대처 식구들이 들어와 제습이와 가습이를 데리고 마을 산책을 시켰다.
계자가 지나간 살림들이 수습이 좀 되자 여유가 생겼네.
늘 신고 다니는 장화 두 켤레를 씻어
바랜 그림을 고쳤다.
이런 일이란 게 시간이 그리 걸리는 것도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손을 잡는 게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많은 일이 그러하다.
정작 거기 쓰이는 시간이 힘이 큰 게 아니다.
역시 마음을 내는 일이 필요한 거라.
그림 또한 제대로 꽃 하나 그려넣는 것도 아닌
그저 여러 가지 색을 흘리고 흩뿌리는 거라 더더욱 공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던.
1차로 해두고 말리는 중.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다룬 글 하나를 읽는다.
일리아스 책을 들었다는 게 아니라 일리아스에 대해 말한.
이야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사들이 죽어가는 대목에서
시인은 전사들을 호명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누구의 아들이었는가 같은 그의 이력을.
그것에 대해 해석하기를, 시인은 그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죽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라고.
그런 거였겠구나, 내가 계자를 기록하는 것도,
함께 땀 흘린 품앗이샘과 새끼일꾼들을 기록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바로 그런 경의였겠구나 싶었네.
나는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행적을, 그들을 기록해주고 싶었다.
아, 그게 일리아스였겠구나...
밥노동이 왜 때로 귀히 대접받지 못하는가.
같은 시간 공부를 하면 학위라도 남지.
밥은 아무리 해도 먹고 치워버리니까.
그나마 자식에게 준 거라면 그 밥 먹고 자랐다고나 하지.
그게 아니라면 남는 게 없어 그 가치가 떨어지기 쉬운 일이라 누구나 하려들지 않는.
계자에 애쓴 이들이 손발과 마음이 그런 밥노동 같아서야 쓰겠는가.
(당연히 이 말은 밥노동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밥노동이 받는 대우에 대한 것임)
그들의 애씀을 기록할 의무가 내게 있으리니.
언젠가 꼭 이들을 기록하고 엮으리!
개봉박두라고 해두자, 우리들의 계자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