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좋다!

아침뜨락에 들어 걷고

아고라의 말씀의 자리에 앉았다.

다른 날이라면 말을 나눌 것이나

오늘은 하늘과 나무와 새와 바람의 말을 들었다.

일수행도 한다. 어느새 또 무성히 자란 들머리 계단 풀을 좀 뽑기도 했다.

아니, 좀이 아니라 좀 많이!

일을 하고 들어와 먹은 아침밥은 더욱 맛났다.

모두가 주문한 물꼬 콩나물국밥.

재훈샘이 장만해준 드립퍼로 커피를 내리고

식혜도 한켠에 내놨더랬다.

 

늦게야 팔단금으로 몸을 풀고, 대배와 호흡명상도 하다.

재훈샘이 그랬다,

여태 와도 대배 백배를 사실 다 한 건 처음이라고, 하니 정말 좋다고.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그래서 해야 한다. 해나가야 한다.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힘든 게 아니다.

그 힘듦에 견주면 얻는 건 백 배 천 배라.

 

아침상을 물린 지 오래지 않아도 낮밥을 잘 챙겨먹다.

이곳은 밥맛이 유다른 곳이라,

공간이 넓고 동선은 길고 움직임에 애도 많이 써야 하니.

거기다 늘 말하지 않는가, 

"수행하고 차리는 밥상이야! 기도라고! 이 밥 먹고 두 걸음도 말고 한 걸음만 더 걸어가 주시게."

발샤믹 드레싱에 샐러드, 두어 가지 방법으로 낸 식빵.

커피도 내리고 식혜도 내고 차도 내고.

 

전리품(?)도 챙기다. 전장은 아니지만 그런 어깨 으쓱함 같은.

4월 빈들모임에 함께한 이만 챙길 수 있는.

장만 맛있어도 간단하게 얼마든지 해 먹을 수 있을 밥이라.

물꼬에서 담근 멸장 간장 콩장에

이번에 만든 몇 가지 나물을 꾸러미 꾸러미 쌌더라.

그게 어디 먹는 것이기만 할까. 사랑이고 사랑이었다.

 

웃고 떠드느라 나가는 걸음이 더뎠네.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자면 길이 막힐 걸...

고생들 했을 게다. 담엔 서둘러 보내야겄다.

퍽 알찼고 벅찬 시간이었다.

봄은 이미 감동이다. 들이 그렇다.

게다 물꼬의 오랜 친구들이 모인.

같이 있어서 더없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아이 같이 해맑고 고운 이들과 아름다운 시간을 헤엄쳤다.

사랑한다, 벗들이여! 고맙다, 동지들이여!

(* 이번 일정은 틈틈이 진주샘이 영상으로 남겼다.)

 

사람들을 보내고 이른 저녁밥상을 물린 뒤 달골 올랐다.

가물고 더운 날들이다.

새로 심은 개나리며, 고추모종이며 비트모종, 직파한 접시꽃이며,

아침뜨락 여기저기 물을 담뿍 주고 어둑해서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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