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에서 만난 자유

조회 수 864 추천 수 0 2004.02.04 13:18:00
안녕하세요? 김진익입니다.
물꼬의 샘들,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는지요?
물꼬에 있는 동안 참으로 마음이 열리며 사람과의 만남에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옥샘께서 반겨주셨던 미소 여전하신지요?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다녀온 인사를 쓰게 되네요.
학교에 돌아오니 할 일이 많이 쌓여 있더군요. 교단에 나와 처음으로 학생들을 졸업시키게 되었거든요. 졸업장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하나하나 써 보았습니다. 레이져 프린터로 인쇄하면 글씨도 깔끔하고 예쁘겠지만, 일부러 붓펜을 들어보았습니다. 제 손으로 글자 하나 하나 써 나가면서 제 마음 속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가르친 반 아이들과 나누었던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담아 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못쓰는 붓글씨인데, 제가 쓰는 것을 보시고 옆반 샘들이 자기반 것도 써달래서 일꺼리가 더 쌓이네요. 예전 어느 때인가 고급 인력(?)이 이름 쓰는 단순 작업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나고, 지금 이 순간 그 불평을 했던 자신이 한없이도 부끄러워집니다.

자유학교 물꼬,
짧은 기간의 체험이었고, 특별히 학생들을 맡은 것도 아닌 생활이었지만, 아이들과 저절로 만나지는 마당이었지요. 자유는 내 마음 속에서 찾는 것임을 또한 배웠다고 해야 할까요?
하다, 호준, 덕현, 다영, 나현, 다옴, 인원, 정근, 혜연, 윤정, 령, ....... 제가 잠시 스쳐왔지만, 아이들의 얼굴과 그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 하나하나 뚜렷이 각인되어 있네요.
여전히 돌을 주워 오고 있는지요? 허리를 다친 일이 있어서 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즐겁게 하는 일이었고, 제가 돌을 찾아 다니며 어떤 돌이 탑에 잘 어울릴까 생각하다보니 몸도 잘 따라주더군요. 일하시면서 돌의 역사와 사연을 생각하시며 도를 닦으셨다는 샘의 이야기도 더한 감동이었지요.
어린 시절, 한 겨울에 빗살무늬 토기를 굽겠다고 손이 트는 줄도 모르고 흙을 만지던 일이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부엌 아궁이 앞에서 900도의 화력을 얻겠다고 불을 때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때가 저에게 자유로웠을까? 멧돼지 사냥을 간다고 마음이 부풀고 나무창이며 대나무 화살을 만드는데 열중하던 아이들 모습이 다시 한 편의 동영상처럼 지나갑니다. 아이들의 부푼 소망을 이해하기보다, 그들 곁에서 낫이나 끌 연장을 함부로 만지다가 다치지 않을까 조바심내는데 열중했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도 몰랐던 것일까요?
물꼬의 대동놀이는 너무도 인상이 깊었어요. 한 번 맛본 후 매일같이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고, 사회의 통념의 껍질을 벗는 시간이었지요. 놀이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은 것일까요? 물꼬 축구를 하면서 다친 어깨는 여전히 통증을 가끔씩 안겨 주지만, 넘어지는 순간 공중에서 느낀 무중력 상태의 자유 낙하 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 같네요.

그러나 여전히, 자유의 의미를 체감하는 데에 저는 아직 거쳐야 할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 학기에는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삶과 성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무작정 떼를 쓰듯 달려간 물꼬, 이번 겨울에 저는 물꼬에서 수 많은 물음표와 생각거리를 얻어 돌아왔습니다. 다시 가고 싶군요. 가볍게......


옥영경

2004.02.09 00:00:00
*.155.246.137


그렇게 온 마음, 온 몸, 같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애써서 쓴 글을 오랜만에 읽는 듯하네요.
가볍게 또 걸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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