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젖었는가 싶더니 아침해가 났다.
잔디를 패낸다.
대단한 밭도 아니고 겨우 여덟 평 남짓의 공간.
거기 공사를 할 거라 떼어내 다른 곳에 붙이려.
학교아저씨도 도왔다.
그런데, 어쿠! 역시 설명이 부족하였던갑다.
금세 하셨다 싶더니 다른 문제를 남겨놓으셨네.
흙 쪽, 그러니까 아래쪽이 편편해야 하는데,
괭이로 파서 산을 붙여 놓으셨더랬다. 아차!
하실 만큼 하셨으니 이제 다른 일 하십사 해놓고,
그걸 뒤집어 놓고 붙은 흙을 부셨다.
다시 잔디를 팬다.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지.
파는 잔디가 왜 가로세로 15cm인가 이해하게 된.
그게 작업하기도 묶어 옮기기도 맞춤하더라.
삽과 괭이로 두서너 차례로 작업하기 딱 좋은 크기.
어제에 이어 두어 줄 또 하나 내일로 넘기다.
무리해서 할 일도 아니고, 바삐 할 일도 아니고,
공사 시작 전까지만 끝내 놓으면 될.
떼어낸 걸 다른 쪽에 심다.
풀을 매고 땅을 고르고 풀을 흠뻑 뿌려 척척 갖다 붙이다.
남은 일은 또 내일.
초등 아이의 위탁교육 의뢰가 들어오다.
계자를 몇 번 다녀갔고,
여러 차례 만난 아이였다.
형제간 갈등에다 또래 아이들과 하는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물꼬에서 지내고 싶어하고,
당장 현장을 떠나오는 게 도움일 수도 있겠지만 고민이 좀.
농촌유학처럼 면소재지 제도학교를 보내고 나머지 시간을 같이 보낼 수도.
청소년들은 물꼬 흐름대로 지내는.
하지만 초등 아이에게야 또래가 있는 게 도움이 더 클 테니까.
한두 주야 일찍이 그런 흐름으로 지내다 가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한 학기를 아주 이주해서 이곳에서 지내는 게 그 아이에게 정말 도움일까?
서로 고민을 더 해보기로 하다.
당장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은 아니니까.
보낼 이도 받을 이도 각자 더 익혀보고 10월에 다시 연락하기로.
목수 민수샘이 들어오다.
저녁에 준한샘까지 모여 작업모임.
사이집 남쪽과 북쪽에 공간을 내고, 햇발동 현관쪽 데크도 다시 하려는.
오전 오후 나누어 나와 준한샘이 붙기로 했으나
그리해서 될 일이 아니겠다는 판단들.
해서 보조목수를 한 명 쓰기로 하다.
내일 저녁 한 명이 들어오고, 10일 쇠날부터 작업이 들어갈 수 있겠다.
“제 여동생이 아드님을 안다네요.”
서울 사는 어떤 분이 영동에 적을 둔 동생 분을 전했다.
엄마의 아들이었다가 어느새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되었네.
예전엔 엄마 누구의 아들 누구였는데,
어느새 자라 그 아들의 엄마로 얘기 되는.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