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참나무(Pin Oak)를 한 그루 심었다,

사이집 돌담과 나란히 해서 울타리 끝선에다.

갈라진 끝부분의 잎에 가시 같은 침이 있어 핀 오크라 불리는가.

참나무과 가운데서 가장 크게 자라기에 대왕참나무라고.

원추형 수형에다 웅장하다.

병충해에 강하고 생육이 왕성해 전국에 식재가 가능하고,

토심이 깊고 빨리 자라는 속성수.

단풍이 수려하고 오래 가서 가로수, 공원수, 골프장에 관상수로 두루 심는다고.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금메달과 월계관과 월계수 묘목을 받았다지.

묘목은 옛 양정고 교정(현재 손기정 기념관)에 심어졌는데,

양정고가 옮겨가고 서울시 기념수로 제정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월계수로 알았던 나무가 바로 이 대왕참나무로 밝혀졌다 한다.

 

대처 식구들 집에서의 밤이었다.

모두가 자고, 도시도 잠들었는데, 아직 꺼지 않은 TV에서 영화가 하나 시작되었다.

제목이 익었고, 봤던 영화인데 결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먼저 장면이 흐르면 뒤이어 봤던 거구나 했고,

그렇다고 다음 장면이 먼저 생각으로 오지는 않은.

1부와 2부가 나눠져 있었고, 그 사이 물건들을 파는 광고가 나왔지만

지나간 영화의 장면이 그 물건들 구경보다 더 재밌었던가 보다.

광고를 보고 그걸 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

심지어 그 광고가 무엇을 파는 것인지 모르고 볼 때도 있었으니,

그리고 광고영상이란 걸 본 게 너무 오래 전이어서

그건 어떤 뜻을 담고 내게 전해지기보다

저 혼자 돌아가는 앞뒤 맥락도 없이 끊어지는 영상 같았다.

그 사이 시계는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갔고 잠도 달아나버렸다.

다시 영화가 이어지고,

연기를 잘한다는 배우였는데, 그가 주연을 맡은 적잖은 영화를 보면서도

그리 잘하는 줄 별 느끼지 못했더랬는데

, 그가 정말 어딘가 현실에 있는 사람 같아서 놀랐다.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 것도 이런 걸 보고 그러겠구나 했다.

영화는 흘렀고 대사 하나가 남았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자신도 버려지는 데 꽤 익숙했던 남자가,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그가

누군가를 믿는 게 가능하지 않았던 이가 말했다.

맥락 속에서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믿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였던 걸까?

사람은 존재적으로 믿을 수 없지만 상황 혹은 정황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배경이니까

그 상황을 보면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

사람의 행위는 모르겠지만 그 행위를 한, 혹은 하는, 또는 할 정황, 그것이 팩트(현실).

그것을 정확하게 보라는 말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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