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골 이르는 막바지 길에는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50여 미터의 길을 쓸고 차가 오르내렸다.
며칠 비운 방을 데우고, 학교의 부엌살림들을 돌보았다.
학교 마당 가장자리에 태양열 줄등을 걸고 싶었다. 두어 해 전부터 엿보던 일이다.
파티등이라고 흔히 부르고 카페 마당이나 옥상 정원에 설치하고는 하는.
아무래도 과한 값이란 생각에 접었다가,
어쩌다 생각나면 또 알아보다가,
잊었다가,
다시 계자가 왔다.
겨울에 빛이 하나라도 더 있다면 따뜻한 느낌도 하나 더 얹을 수 있겠지.
마침 반품된 물건을 싸게 파는 걸 알게 되었네.
12m 15구 두 줄을 들이다.
한 줄은 부엌과 바깥해우소 건물 사이와 해우소 앞면까지,
다른 줄은 본관 앞 우천매트를 따라
감나무와 감나무 사이에서 ㄱ자로 꺾어 꽃밭의 측백까지 이었다.
어두워지자 밝아진 서른 개의 등.
모닥불도 아닌데 따습다.
손뜨개 소품을 몇 개 자리 잡아주다.
유리병들을 감쌀용으로 만든.
코바늘 0호를 써서 레이스실로 뜨면 좋았을 걸,
손에 있는 거라고는 바늘 3호와 면실.
그걸로라도 대처 나가 있을 적 짬짬이 떴더랬다.
교무실 곳간에 있는 코바늘이 어찌나 어른거리던지.
와인병이며 유리병 몇 씻고 상표를 떼고 그것들을 감싸주다.
저녁 8시 출판사와 편집회의.
출판사에서 기획서를 받았을 때의 주 대상은 10대였다.
하여 제목(가제였지만)도 ‘십대, 책을 들다’로.
독서라는 큰 주제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 2월 초고 맛보기를 쓰면서 대상자가 흔들렸고,
삐걱거린 채 다른 책을 먼저 출간(<다시 학교를 읽다>)하고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온 상황.
도서관에서 며칠 앉아 청소년들을 위한 책들을 몇 십 권 훑어보면서
학습서 같은, 혹은 교훈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런 책을 또 하나 더하고 싶은 책도,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더 좋은 책을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침 편집자도 지난 맛보기 글을 다시 읽어보며
그 글의 결을 유지하는 게 어떨가 싶더라고.
결국 대상자를 바꾸자는 거다.
청소년을 둔 학부모와 교사, 가닥은 그리 잡혀갔다.
청년을 위한 책이 될 수도 있을 테지.
이번 계자에서도 교감 일을 볼 휘령샘의 문자가 들어오다.
밥바라지로 내가 빠지니 사실 그가 교장 일을 볼.
‘혹시 여기서 구해갈 물건이나, 필요한 것 있으세요?’
여기서는 물건 하나 구하는 것도 일이라
들어오면서 늘 그리 살피는 그다.
‘엄마가 보내고 싶어하셔요ㅎㅎㅎ’
그리 덧붙여진 문장.
부모님들이 지난여름 물꼬책방에 있던 주말에 다녀가셨더랬다. 물꼬 식구가 늘었다!
정말 겨울계자가 코앞.
오는 흙날에 샘들 미리모임이 있다.
‘계자 때마다 하는 말이다만 제발 잠 좀 자자!’
그리 문자를 보냈다.
대부분의 두통은 모자라는 잠에서 비롯되니.
지난계자 휘령샘도 두통에 몹시 시달린 날이 있었다.
잠 좀 자는 계자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