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날 전에 하고픈 일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할 수도 있음은 예견했다.그러면 또 나중에 하지.
당장 사람들이 깔고 덮고 베야 할 침구류 빨래 같은, 아침뜨락 풀 같은
그야말로 시각을 다투는 일 아니라면 밀릴.
아침뜨락 밥못에서 내려오는 계단 아래 측백 한 그루 곁,
돌탑에 가까운 작은 돌무데기 있었다.
멧돼지 발에 채였던가 보다,
무너질 만큼 그리 높은 것도 너른 것도 아니었으니까,
파헤쳐져 있었다.
연어의 날은 다가와 버렸고, 눈 찔끔 감았더랬지.
오늘에야 걷어내고 다시 쌓고,
멧돼지 발에 눌렸던 게 맞았던가 보다, 치워보니 그리 상하지 않은.
쉬 쌓았다.수로 휘돌아가는 뽕나무 아래 섰는 난나와 티쭈네 바닥도 손보고 싶었더랬다,
그 역시 연어의 날에 맞춰.
바닥을 긁어내고 부직포를 깔고 거기 하얀 자갈을 깔고
그 위로 난나와 티쭈 자리를 주고팠던.
어느 댁에서 온 자갈도 잘 쓰고 싶었고,
그러면서 풀도 잡고 싶었던.
아직 그곳까진 손이 못 갔지만,
그들 위로 새로 난 뽕나무 가지들이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그 아래로, 그러니까 난나 티쭈 뒤로 꽈리들이 밭을 이루고 있는데
반양지에서 잘 자라는 그들이지만 그렇게 음지여서야...
전지가위로 정리하다.
시골에선 관공서가 여러 역할을 해주는데
가령 오늘 같은 경우도.
아주 가끔 급할 때 우리 게 하필 먹통인 순간, 프린터와 복사기를 면사무소에서 쓸 일이 있었지만
그들 내부 책상으로 가서 쓰거나 따로 부탁을 해야.
그런데 최근 민원인들이 바로 쓸 수 있게 밖에다 프린터를 설치해 둔 거라.
일전에 들렀다가 눈여겨 봐두었고(교무실 프린터 바꾸어야는데!)
오늘 분량이 좀 많은 걸 처리해야 될 상황.
들러 잘 썼네.
세금이 구체적으로 내게 쓰이는 걸 확인할 때 기쁨.
쇠날 밤, 교육일정이 따로 없는 주말이면 밤이 좀 느슨하다.
영화 한 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박동훈 감독, 2022).
수학, 그건 적지 않은 이들을 난감하게 하는 영역.
대입, 아니 이미 그 전에 수포자가 대거 등장한다.
이후, 일상 곳곳에 스민 수학이라지만 일반인들에게야 다시 돌아볼 일 없는 수학.
영화에서 수학자가 학생에게 수학을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묻는다.
머리?
‘머리 좋은 아새끼들이 젤 먼저 포기’한다지.
그럼 노력?
‘그다음 나자빠지는 놈’이 그들이라고.
그럼? 용기란다.
“아자, 할 수 있다!”그런 거냐 물으니 그건 객기라고.
그렇다면? 용기!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 “문제가 어렵구나, 낼 아침 다시 해봐야겠다.”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수학적 용기라고.
그렇게 당당하니 꿋꿋하게 하는 놈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아, 그렇구나 했네.
제목으로서의 영화는 이상한 수학자가 방점이기보다 이상한 나라가 방점일.
수학이 전쟁물자 만드는 데 쓰이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했지만
남한에서의 수학이란 그저 시험점수에 필요할 뿐인.
수학을 다시 대면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랄까.
어른 노릇을 생각게도 했다.
어른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권위가 아니라 바른 삶을 애쓰는, 아이들을 지키는.
덤, 최민식 배우를 또 돌아보게 하더라. 신파조를 울림으로 만들어내는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