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덕이었다.
안에서 두어 가지 걸 것들을 만들었다.
학교에 있는 바깥해우소 벽에는
‘앉아 오줌 누는 사람’, ‘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라고 써 붙여
남자와 여자 쪽을 가리켜왔다.
그곳에 각각 걸어둘 그림을 그리다.
캔버스 1호쯤 되는 크기의 작은 나무판 둘 사포질.
거기 어린왕자와 앤을 그리다.(도안이 있었음)
그림도 단순했고, 채색도 간단한.
한 휴게소에서 그 둘을 한 짝으로 몇 만원에 판다는 말을 들었네, 하하.
저 아래 시커멓고 커다란 세계를 펼쳐놓는 이 해우소는
이제 그리 오래 존재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새 이름표를 단다. 그게 사는 자의 자세라.
낼모레 또 찾아올 멧돼지가 뒤집어놓은 도랑을 다시 고르는 일 같은.
이 낡은 학교터를 놓을 때까지 그리 살리라 한다.
사이집 툇마루 창에 걸 발 두 개.
다림질한 옥사에 민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
나비 도안을 그리고 흰색으로 먼저 물감을 먹여두었다.
번져가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나 궁금해 왔는데,
민화 그리는 미자샘이 기법을 가르쳐주었던.
다 그려놓고 선을 치는데,
아쿠, 서툴러서 좀 두꺼워졌네.
날지 못할 나비가 되는 듯한.
그래도 나비는 나비라.
비 내리는 제법 먼 길을 운전했다.
인척의 얼굴을 뵈러간 걸음.
여러 해 상담 내담자이기도 한.
어른들은 당신들이 잊히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쓸쓸함을 걷는다.
환한 당신을 보아 기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