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 옮기기.
농기계 창고 안에서 뒤란 화목보일러 안으로.
서서히 겨울 계자가 그리 준비되고 있다.
낮 1시 택견모임.
이번 학기 달마다 한 차례 네 시간을 하고 있는 모임이다. 그 네 번째.
오늘은 몸의 압통점을 서로 살피며 몸을 충분히 풀고서
몸풀이, 택견으로 이어졌다.
바깥 날씨가 꼬물꼬물한 데다 몸을 풀고 나니 노곤해져
거기까지만 하자는 게으름도 끼어들었으나
밀고 가보면 더 좋은 게 기다리는 진리!
마침 뒤늦게 생일을 축하해온 떡케잌이 차에 실려 있었기
마무리에 같이 나눠먹기도.
다음 모임에서는 택견의 전체동작을 다 한 번 훑기로.
상담. 11학년 아이를 둔 부모.
한 번 놀아보라 했고, 충분히 놀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단다.
때가 되면 제 길을 찾겠거니 했지만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논단다.
안 되겠구나 싶다고.
그 시간을 그냥 보낸 건 아니리라, 그 사이에도 성장이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지만
이제 더는 이대로 볼 수가 없다고, 저러다 아무것도 안 되겠다 했다.
아이는 여전히 놀고 싶어 하고,
자기 역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직 뭔가를 할 의지는 없단다.
때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안내자의 역할도 해야 함에 동의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성실’을 요구할 필요에 대해서도 조언하다.
성실도가 많은 부분을 좌우하더라. 심지어 지능에서조차.
선천적 재능? 그런 게 있겠지.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은 것들이 갖는 축적에 비길 게 아니다.
이미 내가 가진 이 조건에서 더 나은 상태가 되려는 태도,
그것이 성실이고
그것을 쌓아 실력이 된다.
‘노오오력’ 담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생을 이쯤 지나온 우리로서는 잘 알지만
아이들에게 그건 잘 다가가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가...
한편 나는 의지가 꺾인 부모를 더 걱정하기도.
허리가 꺾인 부모...
우리가 아이를 도우려면 힘이 있어야지 않을지.
그래서 우리 살피기부터 하자 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