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2009.2.7) - 옥영경

공동체 조회 수 32207 추천 수 0 2014.09.03 20:54:09


* 송유설과 안미루의 혼례(2009.2.7)

 

* 주례사가 가난하여 두 사람이 살아온 날을 담은 슬라이드로 앞을 열었답니다.

  하니 슬라이드(파일첨부)를 더해 주례사가 되는 셈이었지요.

 

 

 

주 례 사

 

옥 영 경

 

저는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한 아이가 자라는데 바람 이슬 햇볕 수많은 손길, 그리고 거룩한 기운들 틈에 저도 동참하고 있다 싶으면, 그 일이 너무나 귀해서 가슴이 벅찹니다. 오늘 우리가 두 사람의 생의 중요한 자리에 동참하게 되었음을 먼저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직 세상 경험이 하찮은 제가 주례를 맡은 것은 물론 두 사람과 맺은 남다른 인연 때문입니다. 고아원 아이들을 비롯해 여러 아이들이 모인 곳에 두 사람이 기꺼이 바쁜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를 오면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 맞습니다. 또, 흔히 주례를 보는 어르신들에 나이가 미치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제 설 자리를 알아야 하거늘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주례를 보게 되었다고 다른 분들한테 전하니, 주례를 맡은 사람도 맡은 사람이지만 주례를 부탁한 신랑각시가 더 대단하네 그러셨습니다. 이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대학을 나온 이들에게 지도교수가 왜 없을 것이며 존경하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지요? 그런데도 저를 주례로 세운 것은 앞서 두 사람의 서약문에서도 말했듯 이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겠다’는 뜻의 한 예일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지요. 두 사람이 좋은 도반으로 정말 필요한 일에 힘을 쏟고, ‘생-각-한 대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저도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습니다. 지난 겨울 며칠 동안의 어떤 명상수련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모두가 살아오며 겪은 아픔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틀째 되던 한 순간 사람들이 모두 절 보았습니다. 저만 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입니다. 제가 부끄러워 그랬을까요, 아니면 정말 절망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때까지 사실 저조차도 할 말이 없다는 걸 모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알아버렸지요. 저라고 어찌 곡진한 사연 하나쯤 없었겠는지요. 외려 여기 있는 누구보다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 남편을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한 인간을 얼마나 치유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남편은 때로 저보다 저를 더 많이 이해해주어 흔들릴 때마다 제 자신의 길을 가도록 격려해줍니다.

예, 저는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온전하게 서로에게 ‘편’이 돼주길 바랍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온전히 나를 아껴준다 싶으면 우리는 크게 어긋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그 충만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도 살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얘기가 있지요. 부부싸움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을 반영한다 합니다. 유치원교사인 아내를 둔 남편이 술에 곤죽이 되어 들어왔다 합니다.

“술 마시라 그랬어요, 마시지 말라 그랬어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러면, 만약 술자리에 가면 많이 마시라 그랬어요, 조금만 마시라 그랬어요?”

“조금만...”

“앞으로 술 마실 거예요, 안 마실 거예요?”

“안 마셔, 안 마셔.”

“마시면 죽~어~요.”

 

유설님과 미루님도 그리 싸울 걸요. 저는 두 사람의 성품을 잘 압니다. 퍽 온화하고 보기 드물게 지혜로운 이들이지요. 사는 일이 어찌 오늘처럼 그렇게 가슴 떨리기만 하겠는지요. 하지만 서로에게 건조해질 때도 윤기를 더하며 살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의 우리들에게는 이렇게 결이 고운 이들을 지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잘 살아서 이렇게 선한 이들이 아무쪼록 무탈하도록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뚜벅뚜벅 자신들의 삶을 걸어가는 두 사람을 같이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랑 미루님 각시 유설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함께 하여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9. 2. 7)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35 배움 하야시 다케지의 ‘박식한 것과 현명한 것’ 가운데서 물꼬 2010-07-03 11195
34 배움 八玄秘訣/ 8,영자팔법'과 '팔현비결' imagefile 물꼬 2009-05-02 7062
33 배움 모욕적인 말에 상처 입은 네게 [1] 물꼬 2010-08-31 6649
32 배움 삶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묻는 아이에게 물꼬 2010-09-07 6352
31 배움 또 하나의 저항방식 - 옥영경 옥영경 2003-02-08 6014
30 배움 자동차 보험료 아끼는 요령 물꼬 2011-02-24 5953
29 배움 八玄秘訣/12,역기(逆起)와 돈(頓)까지가 어렵다. 물꼬 2009-05-02 5498
28 배움 八玄秘訣/17,역행(力行) imagefile [1] 물꼬 2009-05-02 5434
27 배움 八玄秘訣/24,팔현비결의 차레대로 적은 모양세 imagefile 물꼬 2009-05-02 5199
26 배움 八玄秘訣/7, 한일(一)자 쓰는 법 imagefile 물꼬 2009-05-02 5009
25 배움 八玄秘訣/ 7-2팔점법으로 쓴 한일(一)자를 뚫을 곤(ㅣ)자로 세워 보았습니다 imagefile 물꼬 2009-05-02 4763
24 배움 첫 등산을 위하여 물꼬 2009-09-14 4728
23 배움 八玄秘訣/ 9,역기에 대하여 imagefile 물꼬 2009-05-02 4727
22 배움 八玄秘訣/21, 제수(齊收) imagefile 물꼬 2009-05-02 4723
21 배움 八玄秘訣/19, 꺽을 촤 imagefile 물꼬 2009-05-02 4688
20 배움 八玄秘訣/22,장법(章法:짜임새 ) imagefile 물꼬 2009-05-02 4686
19 배움 八玄秘訣/25,연재를 마치고 imagefile 물꼬 2009-05-02 4645
18 배움 八玄秘訣/15,육낙(코피육,落) imagefile 물꼬 2009-05-02 4609
17 배움 八玄秘訣/23, 점(点), 일(一), 영(永) imagefile 물꼬 2009-05-02 4549
16 배움 八玄秘訣/18,주(住) imagefile 물꼬 2009-05-02 453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