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좀 더 밀도 있게 쓰리라 작정한 아침,
몸을 풀고 책상 앞에부터 앉았다.
작은 글도 함량을 높이리라 하고.
그러자면 부지런해야 하리.
나는 더 읽고 더 쓰려 한다.
밀도 있는 날도 오리.
아침뜨락 옴자에 남아있던 마른 검불을 긁었다.
수선화가 힘차게 오르는 중이고,
샤스타데이지는 땅에 붙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겨울은 거치나 이맘 때는 꼬리를 내릴 밖에.
지느러미길에서 맨 위 밥못으로 이르는 물관을 연결했다.
겨우내 끊었던 물이다.
물이 힘차게 올랐다.
다른 쪽으로 이어놓은 물 호스 하나는 예취기에 상처 입었던 부위가 약해져 그예 물이 샜다.
당장 쓰지 않는다고 이건 다른 날로 넘긴다.
겨울은 그렇게 흔적을 남겼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봄이 왔고, 고치면 되니까.
마침내 봄 왔다.
햇발동 청소.
아이가 온다. 태어난 아이가 온다. 이 시대에도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 엄마의 어릴 때를 안다. 그가 자라는 시간을 보았다.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가 되고 직장인이 되고,
연애를 하고 혼례를 올리고, 그리고 출산을 두 달 앞두고 다녀갔다.
지난 섣달 아이는 무사히 세상으로 나왔다.
저녁밥상에 대여섯 앉았다.
모이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좋다.
규명샘이 물었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무엇이라 보는가 하고.
귀차니즘 한 면 아닐까?
우리는 누구를 위한 작은 헌신에 게을러졌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런 시간을 요하니...
보다 자신이 귀해져서도.
그건 어떤 면에서 또 긍정적이기도.
우리,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생이 뭐라고. 내 생 내가 마음 좋았으면 싶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교육에 대한 생각을 좀 바꿔보는 건 어떨까?
결국 가치관 문제겠네.
사람 키우는 데 그리 많은 게 들지 않음.
질문한 이의 의견은
애 키우는 데 얼마가 든다 언론이며 주위에서들 하도 말들 많으니
아예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고.
행복하다는 희망이 있어야 출산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싶다.
인생 전반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내일을 꿈꾸겠는지.
밤이 아주 깊었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내일이 보름.
반달만 되어도 훤한 멧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