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1.불날. 맑음, 춘분

조회 수 847 추천 수 0 2023.04.10 23:46:58


춘분, 아름다운 날이다. 경칩과 청명 사이.

2월 바람에 김장독 깨진다듯 이맘 때 바람도 많으나

그조차 없었다.

이제 해가 길어져갈 것이다.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마치 새로 시작하는 설처럼 나이떡을 먹는 날,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된다고 마을에서 머슴떡도 먹는 날.

작년 춘분엔 꽃샘추위가 다녀갔는데...

볕이 좋은 방에서 이른 아침 해를 맞으며 해건지기.


젊은 날 암벽을 탔던 이의 집에서 낮밥을 먹었다.

피켈(곡괭이)과 바일(손도끼)이며 램프며 등산화며

옛적 부부가 함께 썼던 물건들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는 뇌경색으로 한쪽 몸을 쓰지 못하는 남편과

첼로를 전공했으나 두부를 만드는 기계에 손이 껴 오른손가락을 다 잃은 아내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황태 작업장으로 가기 전 황태가공 마을기업에 가서

통황태를 축여 큰 커터칼로 배를 가르고 펴고 누르는 작업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없다.

황태를 거는 일도 내리는 일도, 가공하는 일에도 그렇다. 심지어 한국인도 드물다.

나이든 마을 아낙 넷이 일하고 있었고,

10년을 했다는 여든다섯 할머니는 변형된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당신의 세월을 손으로 들었다.

내 몸도 내가 했던 일이 담겼을 테다.

 

황태덕장 작업이 며칠째인가.

어제 하루 쉬었으니 엿새라.

780미 자루 작업이었다.

9140, 8120미에 이어.

내일은 10180미를 채우게 될 것이다.

! 오른손 엄지 안쪽에 가시가 박혔다.

! 자꾸 건드리게 된다.

하던 자루 마저 하고 들여다보자 하고 또 하고,

집에 가서 뽑지 하고 또 하고,

그러다 아픔이 자주 등장하니 멈추고 빼기.

바늘까지 찾진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

손톱으로 반대방향을 잘 가늠해 가시에 손톱 걸릴 때 쏘옥 뽑았네.

오늘도 덕목에 머리를 서너 차례는 기본으로 박고.

두 번은 아주 거세게 박아 소리를 안 지를 수가 없었더라.

 

저녁이 내릴 녘 마을 뒷길을 걸었다.

어둠이 묻어오고 있었다.

가을이 그리 가파르게 겨울로 흐르듯이.

네팔이 생각났다.

일찍 다음 마을에 닿아 해거름 녘 마을길을 걸었던.

저녁답에 산너머에서 또 머잖은 도시에서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선배들 건너온다 하기

아이구야, 오늘은 말렸네.

비린내가 가셔지지 않은, 고단도 비린내처럼 몸에 붙은 밤.

09시 덕장에 들어서고, 18시 덕장을 나선다. 낮밥 1시간.

정해준 건 아니다. 저가 정한.

하루 8시간 노동을 염두에 둔 움직임.

여기는 설악산 백담사 아래 용대리.

 

학교에서는 감자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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