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6.해날. 맑음

조회 수 329 추천 수 0 2023.04.18 11:34:47


마늘밭 고랑을 팼다.

벌써 기세가 여간 세지 않은 풀들이다.

겨울을 난 마른 풀들 사이 겹쳐오는 봄이라.

 

한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고,

사는 일이 그렇다.

보내는 계절을 여미고 맞는 계절을 위해 준비하고.

겨울이 모질고 긴 대해 골짝이다.

가마솥방의 성탄 장식물(겨울 장식물이라 말할)을 떼어내고

꽃밭의 소나무에 달린 성탄볼을 정리하다.

풀어내고 씻고 말리고 상자에 넣고.

달골 햇발동 앞에도 있으나 한번에 한다고 굳이 오를 건 아니고

그건 거기 일들을 볼 때.

 

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잠시 걸음 할 수 있겠냐고.

사랑방 구실을 하는, 밭 가운데 비닐하우스였다.

부녀회에 신입회원으로 셋이 들어오게 되었단다.

몇 해가 지나도 데면데면하다가,

두어 해 동안 마을에 스며들려 애쓰다가,

예닐곱 해가 되어도 얼굴만 삐죽삐죽하다가 비로소 회원들이 되는.

스물댓 명을 회원으로 부녀회가 있었고,

신구 갈등이 심했던 2013, 2014년에 어거지로 부녀회장을 했던 적 있었다.

그 갈등이 다시 불거진 지난 두어 해를 봉합하면서 올해 부녀회장을 맡게 되었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노인회와 부녀회에 걸쳐 있었는데

1월을 건너며 70세 이상은 부녀회에서 탈퇴를 하기로 했고,

그렇게 열둘이 남았고, 이제 셋을 더해 열다섯이 되었다.

한 시절을 보내고 새 시대를 맞았달까.

어떤 것이든 시작의 설레임이 있다.

 

산골 들어와 살며 마음 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물꼬라는 울타리가 있어 안전망이 된 부분도 적잖았지만.

한편 그 울타리가 경계가 되기도. 마을사람과 학교사람이라는.

오죽 했으면 20년을 살아도 외지인, 외지인도 아니고 외지것,이라던 어르신들.

그래도 세월 가니 마을 사람이 되었다.

시간은 힘이 세다.

들어오는 이들이 어여 뿌리내리도록 잘 돕고 싶다.

흔히 서러웠다던 시간을 그들이 겪지 않도록.

사는 일도 벅찬데 마을에서 부대끼기까지 해서야...

그의 삶이 조금 더 가벼울 수 있도록 돕기.

부녀회는 자원봉사가 중요한 목적 하나임을 상기하다.

환영한다, 새 벗님들.

새 회원이지만 나이는 5,60.

시골 나이들이 그러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74 2004학년도 학부모모임 길을 내다, 3월 13-14일 옥영경 2004-03-14 2284
6573 3월 2일 예린네 오다 옥영경 2004-03-04 2284
6572 3월 4일 포도밭 가지치기 다음 얘기 옥영경 2004-03-09 2277
6571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271
6570 글이 더딘 까닭 옥영경 2004-06-28 2259
6569 6월 14일 주, 아이들 풍경 옥영경 2004-06-19 2258
6568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253
6567 6월 14일, 유선샘 난 자리에 이용주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19 2252
6566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239
6565 5월 6일, 류옥하다 외할머니 다녀가시다 옥영경 2004-05-07 2231
6564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옥영경 2007-11-21 2226
6563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226
6562 운동장이 평평해졌어요 옥영경 2004-01-09 2223
6561 6월 10일 나무날, 에어로빅과 검도 옥영경 2004-06-11 2221
6560 5월 29일, 거제도에서 온 꾸러미 옥영경 2004-05-31 2220
6559 처음 식구들만 맞은 봄학기 첫 해날, 4월 25일 옥영경 2004-05-03 2220
6558 6월 11일, 그리고 성학이 옥영경 2004-06-11 2218
6557 2005.10.10.달날. 성치 않게 맑은/ 닷 마지기 는 농사 옥영경 2005-10-12 2214
6556 6월 9일 물날, 오리 이사하다 옥영경 2004-06-11 2210
6555 2007. 5.31.나무날. 소쩍새 우는 한여름밤! 옥영경 2007-06-15 220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