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해남·강진·보성에서 연다.

어제는 달마고도 둘레길을 걸었고,

오전 어른의 학교의 우리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를 걸었다.

천불전 아래 800년을 산 느티나무 연리근을 오래 보았네.

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連理枝).

이때의 리는 나이테를 뜻한다 했나.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현종과 양귀비의 언약이 이러했다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在地願爲連理枝)...’

대흥사 뜨락엔 동쪽과 서쪽에 찻집이 각 하나씩 있는데,

한 찻집 앞에서 아들이 노모 손을 꼭 붙들고 서 있었다,

연리지 혹은 연리근처럼.

연리지만 해도 다정함을 뜻하나

본디 고사는 후한말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더라.

그의 효심은 지극했는데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라 연리지가 되었다는.

모자가 맞잡은 그 손에 부처가 있었다. 정토도 그곳일 거였다.

 

이제는 돌아가신, 김세종제 판소리를 지녔던 성우향 선생님을

일찍이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고,

학교를 떠난 뒤에는 선생님 연구실에서 소리를 받았다.

뛰어난 제자가 많았으나 오래 이어진 세월 덕에

제자가 선생님을 알릴 기회가 있을 때면 선생님은 그 글을 내게 쓰게 하셨더랬다.

세월에 견주면 제자치고는 소리가 얕아 안타까움 적잖다.

1996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1997년 그 1주기 추모식을

물꼬와 삼풍백화점유족회가 같이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었을 때

선생님은 제자들과 무대에 서기도 하셨더랬다

(, 잊고 있었는데, 삼풍백화점 현장에서 살풀이춤을 추었던 이가 나였다니까, 하하).

선생님은 해마다 여름이면 한 달을 대흥사 아래서 제자들과 산공부를 하셨더랬다.

집중수업 그런.

그때 나? 며칠 머문 게 전부였지만,

잊히지 않을 날들이었다.

그곳을 30년도 더 지나서 걸었나니.

옛날은 가도 사랑은 남고

사람은 가도 그 시간이 우리 어깨에 나비처럼 앉았더라.

 

오후에는 강진에 있었다.

강진은 다산의 유배지.

(영랑 생가도 이 어디쯤이지 않았나. 일제강점기 단 한 줄도 친일 문장을 쓰지 않았다는 시인)

한가운데 돌탑 연지석가선이 있는 못가에도 앉고,

다산초당에도 들었네.

거기서 문 활짝 열어놓고 소리를 했다.

마루가 객석이었고, 걸터앉은 이들이 귀를 기울였네.

몇 걸음 더 오르니 동암.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가지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은 건물,

목민심서가 여기서 완성되었다지.

동암 마루에서 주인장처럼 지나는 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1km 남짓 숲길은 비자나무 소나무 대나무 차나무들이 줄지었다.

4월이나 아직 동백 붉게 달렸기도.

그 옛적 다산과 백련사 아암 혜장 선사가 오가며 우정을 나누었던 길.

대흥사에 있던 초의 스님을 다산에게 소개한 것도 혜장이었다.

혜장 입적 뒤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서와 시학을 배웠다 한다.

서로를 성장시켰던 아름다운 우정을 곱씹었다.

 

백련사 이르기 전 차밭이 맞았다.

백련사는 만덕사로 산문을 열었더랬고,

고려 무신정권기 정치와 종교가 제 기능을 잃고,

몽골과 왜구 침략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고자

요세 스님이 백련결사를 벌인 도량.

세종의 둘째 형 효령대군이 불교에 귀의하고 입산한 사찰도 여기라더라.

그 시절은 그 시절로 가고

이 시절은 또 이 시절로 사네.

 

보성으로 갔다. 차밭에 들어 찻잎을 따서 씹으며 걸었다.

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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