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5.물날. 비

조회 수 622 추천 수 0 2023.05.03 23:55:36


엊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곳곳의 산불도 주저앉혔다. 그렇게 또 사람이 살아진다.

몹시 더웠던 3월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을 한 번에 피게 하더니

이 비에 또 내려앉는다.

아쉽지만 또 다른 꽃들이 천지를 덮으리라.

청명이고 식목일이었네.

 

한복을 하나 짓고 있다, 생활한복 말고 전통방식대로.

대신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치마를 짧게.

오늘 저고리에 깃을 달고, 고름을 달다.

그리고 여기저기 시접을 뜯어냈다.

동정은?

파는 동정으로 다는 연습은 하다.

그러나 다시 떼어내고 치마말기를 만들었던 면으로

두 겹에다 안감까지 넣어 조금 딱딱하게 만들어

동정마냥 아주 달았다. 한 몸이게.

때때마다 동정을 다는 것과는 달리 붙인 채 바로 빨래를 할 수 있는.

동정만큼 도도한 멋은 없지만.

생각해보고, 그리 고쳐보는 일이 즐거웠다.

되더라. 게다 밉지 않더라. 아니, 곱더라.

동정만큼 뻣뻣하게 풀 먹인 모양새 아니어도

제법 세움이 되어 정갈하였다는.

 

 

화도 좀 내고 사시라.

어제 아침 낫질하다 담의 습격을 받았고

이도저도 못하는 걸음처럼 아주 꼼짝을 못하겠는 몸이었는데,

그래도 주섬주섬 입는 옷처럼 이러저러 움직이기는 했고,

한 번씩 아주 놀란 듯 아야,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간밤 몸을 눕히느라고도 애를 먹더니

누워서도 앓고

다시 일어나면서 어쩌지 못하고 끙끙대다 몸을 일으켜 움직였는데

두통까지 엄습했다.

(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을 병이다.)

 

그래서였을까.

비도 내리고 차량 뒤쪽 카메라도 얼룩져 잘 보이지 않는데

막 통과한 굴다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

양보를 하네 못하네,

당신 바쁘면 나도 바쁘고,

그러다 뒤에서 진입한 차량에서 그예 사람 하나 내려 상황을 정리하는데,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잠시 키웠다.

그런데... 하하, 시원했다.

거기 무슨 악의들이 있고, 무슨 대단한 감정들이 있었겠는가.

그저 모두 바빴거나 사정이 있었거나.

오히려 홀가분함이 들었는데,

대개 화는 결국 자신의 기분도 망치게 하지만 이건 좀 다르더라.

 

그대도 가끔 그리 화를 내 보시기.

화가 안 나는 거라면 좋겠지만

일어나는 화를 너무 누르지는 마시라.

화를 좀 낸다한들, 괘한다. 우리 그리 나쁜 사람 안 된다.

 

결리는 담을 서둘러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까

부황기로 피를 좀 뽑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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