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12.물날. 황사 덮힌 천지

조회 수 355 추천 수 0 2023.05.11 23:43:30


안개처럼 황사가 덮친 천지였다.

외출을 자제하라지만 밥벌이를 하는 이도 들일을 하는 이도

그저 밥을 벌고 땅을 갈았을 테다.

 

어제 심은 묘목들이며 옮긴 나무들부터 살폈다.

고마워라.

멧골이 들렸다 내렸다 할 만한 바람의 간밤이었더랬다.

별일 없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뭔가를 심고 비 내리면 공으로 먹는 밥 같은 거라.

하기야 비 소식 듣고 그래서 나무일도 흙일도 했던 거고.

좋은 조각천이 좀 생겨

필요한 주머니 두어 개 만들고.

어른의 학교에서 사람들 몇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저녁답에는 산에 들었다.

한 마을의 동네 산이었다.

벌목을 하고 엄나무를 심었다 했다.

키가 높았다.

사람들 손이 닿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

숲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나물 귀한 줄 모르거나

아니면 산 아래 먹을 게 너무 많거나.

어제 엄나무순이 들어와 잘 해먹었고,

그 결로 엄나무순을 따러 들었다.

열흘 잠깐이라는 엄나무순이다.

나물가방을 메고,

낫을 들고 갈고리처럼 가지를 자른 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고개를 들고 살피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 뒤집어진 엄나무 마른 가지가 반짝거린다.

고개 들면 엄나무 있고,

거기 높이 높이 개두릅이 달렸다. 꽃처럼 달렸다.

낫으로 가지를 당기고, 갈고리 지팡이로 더 가까이 당기고,

낫을 놓고 그 손으로 개두릅을 꺾고.

개두릅은 꽃받침을 달고 야들야들 춤추었다.

 

개두릅은 물꼬에서 올 봄의 주제가 될 만하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치거나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잎은 그늘에 말려 차로도.

튀김이나 부침개로 쌈으로도.

밥 지을 때 밤 뜸 돌리는 시간 어린 순을 잘게 썰어 밥 위에 뿌려 익히고

양념장에 비비기도.

산이 내준 것들로 넘치는 봄 밥상에 개두릅도 한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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