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6.흙날. 비

조회 수 308 추천 수 0 2023.06.09 03:41:23


비다!

비님 오시다!

어제도 왔고, 그제도 왔다.

가물었더랬다.

제한급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전남의 섬 지역만이 아니었으나

보길도 노화도 금일도 소안도 들이 주 한두 차례 물이 공급되었다 했다.

이번 비에 저수지 수위가 절반 이상 올라갔다고.

차차 제한급수가 해제될 거라는 소식.

고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들을 해내는 시대라 해도 하늘이 할 일이 늘 있는!

 

이웃의 젊은 아낙이 전화를 넣었다.

비도 내리는데 혹 물꼬도 여유가 좀 있지 않겠냐고.

초대였다.

음악이 흘렀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인형의 몸통에 솜을 집어넣으며

같이 비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안한자적(安閑自適;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다)이라.

정극인의 상춘곡이 절로 나오다.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녯사람 풍류를 미칠가 못 미칠가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에 뭇쳐 이셔 지락을 모를 것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앏픠 두고

송죽 울울리예 풍월주인 되어셔라

 

하하, 딱 여기까지만 되더라.

그러다 그 끝도 기억해내나니.

공명도 날 뀌우고 부귀도 날 뀌우니

청풍명월 외예 엇던 벗이 잇사고

단표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하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무서워라, 긴 세월 건너서도 이리 입에 오르는 가사여!

단표누항(簞瓢陋巷)을 거기서 배웠다.

누추한 거리; 대광주리와 표주박과 소박한 거리; 도시락과 표주박과 소박한 거리; 소박한 생활

그리 살고 싶었다.

그리 산다.

멧골의 바쁜 가운데 잠깐 얻어낸 틈, 망중한(忙中閑)이었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334 128 계자 이튿날, 2008.12.29.달날. 구름 걷어내며 해가, 그러다 싸락비 옥영경 2009-01-02 1622
6333 7월 26일, 성적표(?)를 쓰기 시작하면서 옥영경 2004-07-30 1622
6332 6월 23일, 찾아오신 분들 옥영경 2004-07-04 1621
6331 6월 7일 달날, 한국화 옥영경 2004-06-11 1621
6330 2006.11.24.쇠날. 속리산 천황봉 1,058m 옥영경 2006-11-27 1619
6329 6월 23일 나무날 선들대는 바람에 숨통 턴 옥영경 2005-06-26 1617
6328 119 계자 닫는 날, 2007. 8. 3.쇠날. 소나기 옥영경 2007-08-10 1616
6327 146 계자 갈무리글(2011. 8.12.쇠날) 옥영경 2011-08-18 1615
6326 3월 29일 주 옥영경 2004-04-03 1615
6325 1월 28일 쇠날 맑음, 101 계자 다섯째 날 옥영경 2005-01-31 1614
6324 123 계자 여는 날, 2008. 1. 6.해날. 맑음 옥영경 2008-01-10 1613
6323 10월 26-8일, 혜린이의 어머니 옥영경 2004-10-30 1613
6322 98 계자 나흘째, 8월 19일 나무날 잠시 갠 비 옥영경 2004-08-22 1613
6321 한 방송국에서 답사 다녀가다, 2월 20일 옥영경 2004-02-23 1613
6320 4월 8-10일 영경 산오름 옥영경 2004-04-27 1612
6319 111계자 나흘째, 2006.8.3.나무날. 덥다 옥영경 2006-08-07 1611
6318 3월 31일 나무날 대해리도 봄입니다 옥영경 2005-04-02 1611
6317 물꼬 노가대, 4월 17일 흙날 옥영경 2004-04-28 1609
6316 2022. 4.17.해날. 맑음 / 교실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 옥영경 2022-05-07 1608
6315 12월 9일 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4-12-10 160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