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14.해날. 맑음

조회 수 419 추천 수 0 2023.06.24 10:14:37


사는 일이 날마다 정리하는 거네.

삶의 자리를 정리하는, 그래서 언제든 떠나도 남은 일이 없는 양.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입고 빨고 널고 개고, 뭔가를 하고 치우고, ...

오전에는 교무실과 옷방을 정리하고 나왔고,

오후에는 고래방 뒤란 창고를 뒤집기로 한 날.

물건이란 어느새 쌓이는 속성이 있고,

공간이 창고이고 보면 곳곳의 물건들이 다 거기로 바다처럼 모이게 되는.

허니 어느 틈에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는.

한 칸은 주로 책걸상이 있으니 확인만 하면 되고,

다른 칸은 끊임없이 보수와 보강을 하는 학교의 역사에서 남은 것들이 켜켜이 층을 이룬.

그간에 정리가 왜 없었겠는가. 그야말로 어느 결에 또 그리 쌓이는 거다.

버릴 게 나오고, 다시 쓸 게 그럴 수 있도록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그러면 공간이 남게 된다. 새로 또 들어올 수 있는 자리.

학교에 있는 창고용 컨테이너를 비워 달골로 올리자는 계획이었고,

그러자면 그 안의 것들이 담길 공간이 필요했던 까닭이 이 청소의 알속이었다.

, 이제 컨테이너 안의 물건들을 정리해서 비워있는 공간으로 옮겨볼까?

나머지 것들은 학교 혹은 달골 곳곳 쓰일 자리로 보내면 되지.

 

아뿔싸! 컨테이너 크기가 다르다.

달골에서 농기구집으로 쓰이는 컨테이너랑 이것이 같은 것인 줄 알았고,

그 컨테이너 둘을 경사지에 양쪽으로 놓고 목공작업실을 만들 계획이었던.

그래서 컨테이너를 놓을 쇠뼈대를 여러 날 만들었던 지난주였다; ‘구두목골 작업실

수정! 학교 컨테이너를 그대로 두고,

달골은 현재 있는 농기구 컨테이너랑 같은 것을 하나 구해서 나란히 놓기로.

어디서 어떻게 구하고 옮길지는,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목공작업실은 또 왜?

달골 시대의 거점이 될. 우리 손으로 대부분의 일들을 할 거니까!)

 

하지만 내친김에 정리는 계속된다. 도랑친 김에 가재잡기로.

정리란 건 지나간 시간을 갈무리하는 일이지만

한편 다가올 시간을 맞는 일.

잘 쓰자고 정리한다.

물꼬가 끊임없이 하는 말을 다시 되내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양편 가운데 한쪽만 먼저 정리키로.

겨울 난로도 분해되어 이곳에 들어와 있다.

학교아저씨가 하는 일이라

그 물건이 어디로 들어가 다시 겨울에 어떻게 나오는지 거의 몰랐던.

들어가 있는 물건들은 그것을 다룬 사람들의 시간을 또 이해하게 하는.

때때마다 당신이 이 일을 하시는구나...’

20년 전의 물건 하나는 쓰임 없이 여태 포장상자 그대로 있기도.

편지와 함께 나왔다. 뜯어서 읽기야 했겠지만.

도연이네였다. 다시 고맙다.

한번 쓰고 둔 것이라고, 이 골짝에서 더 필요하겠다고,

가스통까지 실려 왔던 히터였다. 이웃에서 실어갔다.

 

2001년 세 해의 연구년이 있었고,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던 세계의 공동체 방문 때,

서울 살림은 기락샘이 안고 있다

그조차 시카고로 박사과정을 떠나면서 영동으로 내려왔다.(나도 없이 샘들이 옮겼던. 다시 고마운 그 이름자들!)

2003년 돌아와서도 열지 않았던 상자들이 있었고,

여직 안 썼다면 지금도 아쉽지 않을 것들이 대부분일 테고,

예상대로 많은 물건을 버려지는 편으로 보냈다.

뜻밖의 것들이 나와 지난 시간 앞에 나를 데려가기도.

예컨대 대학원 학생회가 준비한 <자본론> 강의를 들었던 수강증이 나오기도.

, 그런 걸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세월이 갔다. 한 시대가 떠났다.

늙었으나,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지금은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

이 순간도 아름다웁다.

그대도 그러신 줄 아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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