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았는데, 다행히 우산도 없이 비를 잘 피해 다녔네. 고마워라.

건물과 건물로 이동하거나, 지하로 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또는 비가 긋거나.

이른 아침 연못 둘레 풀을 뽑고 서둘러 길을 나섰더랬다.

역까지 차를 몰아 서울행 기차에 오르다.

상급병원을 갈 일이 있었더라, 아픈 거 아니고 살펴보러.

막차를 타고 내려올.

 

역에서였다.

내린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떠나는 사람들이 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장.

나오던 누군가 반가이 달려왔다. 심지어 내 손을 맞잡네.

, 지방의 한 대학 분인 건 맞는가 싶은데,

도무지 누군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시냐 묻기에는 몰라서 안 될 분 같았다.

내가 몰라봐서 안 되는, 뭔가 신세를 졌거나 매우 가까웠거나...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았을 때 스쳐 지나는 게 있었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 인터넷으로 확인을 할 수 있지.

, 무려 나랑 몇 해를 주에 서너 차례 마주한 분이었다.

어떻게 그리 깡그리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까닭의 하나는 그의 외모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했을.

얼굴의 각이 좀 사라졌고,

아줌마스럽다(?)고 할 빠글 머리가 긴 물결 머리로 변해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이 훨씬 세련됐고(뭐 잘 모르겠지만),

두툼한 도수 높은 안경을 벗고 있었다.

 

그를 잊은 더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네.

우리는 한 배움터에서 같은 구성원이었는데,

강의자와 수강생이라는 관계이기도,

거기 말도 안 되게 아랫사람을 비하하고 착취하는 못돼먹은 한 사람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도 어려서, 잘 몰라서, 서툴러서 그랬을 수 있었다),

내가 그간 쌓았던 건 포기하는 걸 감수하고(결국 포기하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그에게 들이받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쯤 그 공간이 개선된 바 있었던.

그 당시 오늘 만난 그 분이 그 공간 책임자였던 거라.

그곳을 떠나온 뒤 내 기억에서 딱 벽을 치고 그 시절을 저 먼 곳으로 보내버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밀쳐두었던.

다시 꺼낼 일 없었던. 그곳 사람들과 만날 접점도 없었고.

아주 잊힌 기억이 돼버린 거다.

 

그런데, 그때 나는, 나 역시 10년도 훨씬 더 젊은 때였고,

어리지 않았지만 어른이랄 수는 없었을 그때,

나는 문제보다 사람과 싸우지 않았던가 싶다.

그래서 더 흥분했고, 그래서 더 미워했던.

시간이 흘렀다.

그 싸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한 젊은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끝에,

자꾸만 세상과 혹은 사람과 부딪혀 힘든 그에게 나는 오늘 이리 썼더라.

사람이랑 싸우지 말고 문제랑 싸우시라!’

 

올라가는 기차에서 옆자리 젊은 처자를 만나 수다가 길었다.

대개 내게 기차를 타는 시간은

책을 읽거나 자거나 손에 잡은 일거리(바느질이거나 인형 몸통 솜을 넣거나)를 하거나.

모르는 옆 사람과 그리 말을 섞지 않는 건

코로나가 남긴 풍경이기도 하겠고, 요새 분위기인 듯도,

다들 손전화가 있으니까.

그는 마침 임용을 준비하는 사범대 졸업생이었고,

그래서 아이들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 얘기 나누다.

대전에 거주하지만 집도 마침 영동권.

읍내를 기준으로 물꼬랑 완전 반대편이긴 하나

물꼬에서 같이 아이들을 만나는 날도 온다면 좋을.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다음 내원 예약을 잡는데

2주 뒤 오라고.

한 달 뒤 갈 수 있겠다 하면서 그랬지.

,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병원에서 연락주지 않겠어요?”

그런데 접수창구 직원의 단호한 말,

아니요. 아무도, 절대 아무도 안 해요!”

? 그래야는 거 아님?

문제가 있는 심각한 병인데도 방문을 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건 말이 안 되지!

시스템이란 게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도 주치의 제도를 찬성하는 바임!

(다행히 병원에서 일하는 가족이 있어, 대리처방이 가능해 서류를 내기는 하였다만)

 

여담 하나.

오래전 물꼬 바깥식구 하나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던 적 있었다.

그때 방문한 장기기증센터가 이 병원이었네.

사람도 돌고 돌아 만나고,

공간도 그리 또 돌아서 돌아서 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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