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샘들은 물꼬에 연락을 할 때 주로 문자나 메일을 남긴다.
그게 더 빠르니까.
여기 흐름을 끊지 않겠다는 배려이기도 한 줄 안다.
그런데 뭔가 목소리로 전해야 할 일이 있다.
얼굴을 보고 할 말도 있듯이.
‘옥쌤, 오늘 통화 편하실 때가 있으실까요?’
걱정이거나 좋은 소식이거나.
저녁 9시께 전화하겠노라 하고, 밤 11시에야 생각이 났다.
대해리 들어와 가마솥방을 정리하고 나니 그 시간.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통화부터 하고 기제사 장을 볼 참이었는데...
다행히 이 시간이라도 괜찮냐 문자가 들어왔고 통화했다.
짐작했던 바 있었는데, 혼례소식!
12월로 날을 받았단다.
한가위 지나 인사도 오겠다고.
두어 차례 이 골짝 오기를 엿보았으니 날이 빠르게 지나버렸던.
대학 1학년의 그를 보았던가.
대학의 몇 계절을 여기서 보았고,
교단에 서서도 손 보태러 왔던 그이가 서른이 넘어 되나 보다.
우리 화목샘 소식이다.
청첩장이 오는 대로 널리 알리겠다.
그의 성품을 안다. 그가 만나는 이이니 상대인들 아니 좋을까.
이른 아침 풀 한 무데기 뽑고 달골을 나서다.
서울의 한 병원을 방문할 일 있었는데,
영동역에 도착하자 소나기 훑고 갔다.
대해리는 말짱하다 했다.
올라가는 기차에서 손전화 충전기를 꽂고 전화기를 어디 두나 두리번거리는데,
대구에서 서울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스물두세 살 즈음 보이는 처자가
자기 무릎 위에 놓인 가방을 툭툭 치며
경쾌한 목소리로 “여기 놓으세요”, 했다.
내려오는 기차에서는 통로 쪽 좌석이었는데 창가에 앉았더라니
원 좌석 주인인 20대로 보이는 처자가 괜찮으니 그냥 앉으시라 했다.
작은 친절들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런 청년들을 보는 기쁨이라니.
뜻하지 않게 여태 모르던 어떤 세계를 또 만나게 되고는 한다.
제사가 그렇다.
집안의 막내이고 보니 굳이 절차까지 내가 나서 챙길 일이야 없었던.
워낙 간소화되는 추세이고 절에 맡기는 댁도 흔하니.
제상만 하더라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 차려진 상태로 파는 것도 있다지.
나는 매우 자주 세상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집안의 제사를 모시게 된 것 역시 그런 일일지도.
다행이라 해야 하나 기제사 다섯은 한 분 제사에 얹어 한 차례만 지내면 된다는
집안 어른들의 유연성이 있었다.
(누가) 하라 하지 않았다. 할 수 있겠다 나선 것. 그게 낼모레.
장이야 낼 보지 했는데, 기차역에 다녀가는 걸음에 읍내에서 오늘 장을 본 것.
오가는 기차에서 제사 공부하다.
막연히 알던 것들이었다, 지내는 차례며, 제상이 가지는 의미며.
즐거운 이벤트 되겠다. 아직 힘든 줄을 몰라서 그럴지도.
해보자.
물꼬의 많은 일도 그리 해왔다. 살아온 삶이 그러했다.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