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짱짱해서 고마웠다, 계속 젖은 날들이더니.
덕분에 움직이기 좋았다.
이른 오후 한 때 맑은 하늘에 소나기야 지났다만.
주말에 청계가 있어 기숙사 청소.
이른 아침부터 햇발동 창고동 볕들이고 바람 들이려고도 하던 참.
가마솥방 청소를 하고 늦은 낮밥을 먹은 뒤
낮 3시부터 기제 음식을 장만하다.
‘나의 제사 이야기’라고 쓴다.
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물꼬가 집이니
밥도 물꼬 가마솥방에서 먹으니.
자주 하는 일이 아니고, 해오던 일도 아니라, 기억을 위해서도 기록한다.
제사 모셨다.
결론부터! 뭐랄까, 새로운 인연이 닿는 느낌? 보지 못한 분들이니...
사람이 한 생을 살고
누군가를 기리는 일이(혹은 추모 받는 일이) 깊디 깊은 사람의 일이다 싶은
큰 감동이 있었다.
어찌어찌 하여 올해부터 일곱 형제 가운데 막내(남녀 쌍둥이)가 집안 제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뭐 막내며느리인 내가 나서게 된.
모시던 형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절에 모시게 되었더랬다.
스님이고 음식을 하는 보살이고, 철도 철이라 땀 엄청 흘리면서 고생하는 걸 보고 오자,
이게 무슨 짓인가, 안 할 거라면 모를까 버젓이 자손 있는데,
낯선 이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우리가 모시겠다 나선.
하여 새로운 세계를 또 하나 만나게 된 거라.
병풍 앞으로 상 두 개를 이어 붙여 흰 종이를 깔고 제상을 마련하다.
1열: 메와 갱, 촛대와 위패
2열: 부추전 동태전 산적 두부전 동그랑땡 떡
3열: 너비아니구이 육탕(소고기) 어탕(홍합) 소탕(두부) 생선(이 커서 3, 4열 걸쳐)
4열: 포 삼색나물(숙주 고사리 시금치) 식혜 생선
5열: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포도 화과자
제상 앞으로 돗자리 깔고
향반과 주반을 합친 작은 상 위에 향로와 술과 퇴주합 놓고(그 아래에 모사그릇),
그 곁으로 축판 대신 찻상을 놓고 꽃도 놓고 축문과 다기를 놓음(퇴수기 포함).
제의 차례도 적어놓겠다.
1. 분향재배: 제주가 촛불 켜고 향 피우고 절(두 번)
2. 강신재배: 향으로 하늘에 고했으니 땅에 고함. 모사 그릇에 술 세 번 붓기
3. 참신: 모든 참가자 절
4. 초헌: 술잔 받아 제상에.
5. 독축: 축문 읽고 절
6. 아헌과 종헌: 초헌과 마찬가지.
7. 계반삽시: 멧그릇 뚜껑 열고 수저 동쪽으로 꽂기
8. 유식: 술잔을 더해 채워주는 일이던데 우린 뺌.
9. 합문과 계문: 밥을 아홉 번 떠먹을 동안의 시간,
참신자들이 문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리는데, 우리는 엎드리는 걸로 대신.
10. 헌다: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리고 멧밥을 3번 떠서 말아 놓고 수저도 같이 담금.
차로 대신할 수 있겠고,
우리는 차를 따로 달여 올림.
11. 철시복반: 수저 거두고 멧그릇 덮고.
12. 사신: 참신자 모두 두 번 절. 지방 축문 태우기
그리고 철상(제상 거둠)
정리하자면,
촛불과 향을 피우고 제주가 절하고, 술로 지신에게도 고한 뒤 모두가 절하고,
초헌 아헌 종헌을 하되 축문은 초헌을 한 뒤,
멧그릇에 숟가락 꽂고 조상신들 와서 드실 동안 엎드림.
헌다하고 멧밥 덮고 절하고, 지방과 축문 태운 뒤 상 거두기.
축문은 한글로 썼더랬네.
“유 세차 기묘년 6월 10일 효자 *** 삼가 밝게 고합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날이 돌아와... 상 향”
차를 달이고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헌다가 좋았더라.
참, 어제는 신위도 만들었더랬다.
빳빳한 종이로 받침대를, 그 위로 긴 상자처럼 만들어 비스듬히 놓으니,
기념석처럼 보였다. 거기 지방을 붙이다.
나무색까지 칠하니 나무로 만든 것 같았네.
야삼경에 지낸다는 제사다만 요새는 그렇지 않다는 시절이 또 시절이라
제상을 거두고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니 11시였다.
“별일 없나 해서...”
낮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더랬다.
“올해부터 저희가 제사를 모시게 되어 음식 장만하고 있어요.”
“힘들겠네... (그래도)복 받을 일이다.”
한 벗도 그리 인사를 하더니.
하기야 뭐라고 하겠나.
그런(복) 거라도 있어야 준비하던 노고들에게 보상이 되겄다.
그런데 그냥도 즐거운 이벤트였다.
서로 조금만 마음을 쓰면 식구들 모이기도 좋을 날이라.
생이 더 재미나지 않으냔 말이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일은 일이기 이전 사람노릇 하나구나 싶었네.
어제인가도 썼다만,
'내 삶에 없던 또 하나의 장이 펼쳐진다. 제사상을 다 차리게 될 줄이야...
사람 생이 참 모를 일이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그래서 또 살아가는.
우리 오지 않은 날을 두려워하기보다 반기며 새 세상을 맞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