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출근, 이라고 쓰지만 계자가 끝나고도 아직 교무실 바닥에서 자는 중.

새벽에 타자한 172계자 아이들 갈무리글을 누리집에 올리고

책상 앞을 떠나다.

낮엔 낮에 일들이 기다리니까.

 

학교 욕실에 대야마다 잔뜩 담긴 것들.

실내화들, 욕실화들, 그리고 산오름 때 곳간에서 나와 쓰이고 남겨진 신발들.

세제를 풀어 담가두었다.

빠는 건 내일.

 

오늘은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172계자 사후 통화를 하자고 알린 날.

전화들을 주십사 했다.

아이를 둘러싼 가정의 변화와 학교생활들도 듣고,

그 연장선에서 계자를 바라보며 덧붙일 이야기를 나누다.

처음 온 아이들은 그들대로 어떤 환경에 있는가를 듣고 이곳에서 보낸 생활을 전하고.

아이들을 같이 키워가는 이 느낌 고맙고 좋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어떤 식이든 부모들의 욕망이 투영된다.

그러므로 그 욕망을 잘 보실 것.

그 욕망대로 가느냐 안 가느냐 할.

그 욕망대로 갈 땐 마치 내가 아이를 잘 키우는구나,

욕망대로 안 될 땐 아이의 삶인데 정작 부모 자신이 좌절하고.

우리는 흔히 애 공부 신경 안 쓴다,를 마치 무슨 대단한 교육관처럼 착각하고는 한다.

마치 애 공부 신경 안 쓰는 게 진보적이라거나 키우는 데 우위가 있는 양.

애 공부도 신경 쓰고 그러는 거지.

아닌 척 말고 그냥 우리 자신의 욕망을 잘 보기.

나쁘고 말고가 어딨나, 제 생각대로 사는 거지, 제 가치관대로 사는 거지.

자신의 가치관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가, 그것이 관건일.

아이들은 어른이 되려고 자라는 게 아님, 다만 자라서 어른이 될 뿐인.

여튼 애들 고만 잡고 우리 어른들이나 잘 살자이러나저러나 우리 등을 보고 자랄 아이들이라.

한 아이의 부모에겐 그랬네,

다만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에 힘을 더 쏟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고.

충동조절장애로 보이는 한 아이의 부모는 담임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왔다.

아이가 노력하고, 많이 좋아졌다고.

... 뭘 자꾸 아이들을 노력케 하나.

그냥 좀 살면 안 되나.

어른들이나 노력 좀 하자.

아주 (어른들 눈에 거슬리는)꼴을 못 본다. 좀 두자! 별일 안 생긴다.

기다리자, 애가 아는 때가 온다.

다만 가벼이 조언을 할 수는 있겠다.

정말 아닌 일에 쓸데없이 친절한 목소리 말고

아닌 건 아닌 것, 죽어도 허용하지 않겠는 건 허용하지 말 것.

그런데 그 허용의 기준이 무언지 부모가 깊이 날카롭게 스스로 질문할 것.

아이들을 잘 지켜보겠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물꼬에서 온 힘으로 돕겠다.

 

저녁에는 식구들 모두 읍내 갔다.

작은 영화관에 가기로. 멧골에서 큰일 하나 끝냈다 그런 의미로다가.

무엇을 보았는가 보다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보았다가 중요했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디스토피아물.

사는 일은 좌표가 어디냐, 어디에 서서 보느냐의 문제일.

그래서 누구도 선하다 못하고 누구도 악하다 못할.

보다 선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 잤다.

지루하거나 재밌거나의 문제가 아니고

불을 끄고 등 붙이면 자는 줄 아는 몸의 리듬 때문에.

잠이 짧은 대신 깊이 몰입해서 자는 나인지라.

더구나 고단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더 깊이 깊이 잠으로 갈.

영화관 들어서자마자 자서 15분여 흐르고 깼네, 하하.

 

멧골로 돌아와 교무실에 부렸던 계자 짐을 쌌다.

집으로 돌아왔다. 172계자는 그리 일단락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계자 뒷정리야 계속 하겠지만.

가을 씨앗들도 놓아야지, 다소 늦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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