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31.나무날. 흐림

조회 수 394 추천 수 0 2023.09.06 00:47:30


오전 10시께 119가 다녀갔다.

집안에 들어가 계세요.”

현관으로 들어온 뒤 그들이 올 때까지 나갈 수도 없었다.

마당의 꽃밭에서 뱀 덩어리를 보았다.

한두 마리를 만난 적이야 산 아래 이 풀천지에서 왜 없겠냐만

열댓 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무더기라니.

인기척을 느끼고도 얼른 도망가지 않았다.

그래서도 독사이겠거니 했다.

읍내에서 인명구조대가 출동하느라 4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마을의 인술 아저씨가 마침 벌초하러 올라오셨다가 그 소동에 가까이 오셨다.

처서 지나면 뱀들이 겨울잠 자기 전에 저러고 있어.”

뱀은 열 번 보면 열 번을 다 놀라.”

당장 발로 풀섶을 툭툭 치며 뱀을 찾는 아저씨도 놀래기 매한가지인가 보다.

뱀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원들이 30분을 머물며 그들의 흔적을 좇았다.

우리 마당을 지나 이웃밭 울타리께로 간 모양이다.

그께서 여섯 마리를 잡았다.

긴 집게로 집어 커다란 김장봉투에다 넣었다.

다 자연이라서... 여기 사시면 감수하셔야지요.”

뱀들은 어찌 되는 걸까, 나는 묻지도 못했다.

그저 발에도 맞지 않는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얼어붙어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섰더랬다.

혼자라면 기절쯤 하지 않았을까?

마침 식구 하나 같이 있었기 망정이지.

게다 어제 마침 어른의 학교에서 한 형님이 집안까지 들어온 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참이다.

어쩌면 뱀을 만날 준비가 되었을지도.

 

하여 공부했네.

내가 본 게 교미공(mating ball 혹은 breeding ball)이었다.

번식기에 암컷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수컷이 달려들어 뭉친 모습.

머리가 삼각형인 것으로 보아 독을 지닌 살모사.

6~7월이면 짝짓기와 번식을 하고 7~8월이면 산란,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까지 겨울잠을 자는 살모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산단다.

살모사는 또 무슨 뜻일까?새끼가 배 속에서 부화한 다음 산란하기 때문에

새끼를 낳으면서 어미가 지쳐 쓰러져 있는 모습이 새끼가 태어나 어미를 죽이는 것 같다하여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수명이 긴 자라가 기력이 쇠한 할아버지를 위해 가마솥에 들어갔듯

민첩하고 유연한 고양이는 무릎 아픈 노모를 위해 고아졌고

오랫동안 교미하는 동물을 먹으면 자기도 그렇다고 믿은 사내들이

뱀을 강장제로 먹었다지.

성기가 2개로 짝짓기를 하는 동안 둘을 번갈아 쓰는 수컷뱀.

끝이 갈라져 있어 한번 결합하면 사정이 될 때까지 빠지지 않는 것도 남성들의 주의를 끌었을.

지구력도. 교미시간은 짧으면 2~5시간, 길면 하루도 간다 한다.

사랑나눔 시간이 이렇게 긴데도 실제로 교미 장면을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데,

몸을 잘 숨기는 그들이라서기 보다

암컷은 한번 교미를 하면 몸속에 최장 3년까지 정자를 저장하기 때문이라고.

짝짓기 횟수가 많을 수가 없기에 목격자도 드문 거라고.

그나저나 그들의 아름다운 시간을 방해한, 그들 편에서 보자면 나는 본의 아니게 무례했다.

밟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할.

이 생각도 밤에야 겨우 할 수 있었지만.

 

 

오후에는 잔디깎기와 줄 예취기 작동법을 익히다.

직접 작업까지 한 건 아니고.

오전의 소동으로 전의 상실, 뭐 그런 상태였다 할까.

그래도 밥을 짓고, 밥을 먹었다.

 

말벌이 콧등을 찌르고 갔고,

가장 뜨거운 날과 큰비를 계자에서 지났고,

뱀 무더기로 요란스레 마감하는 8월이다.

슈퍼문이라는데 달구경 나갈 엄두가 아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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