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오목산장의 밤.

설악지구 남설악 아래 오색.

어제 들어와 이틀의 밤을 맞다.

이번 목적은 산오름 아니고, 겨울 들기 전 베이스캠프를 살펴놓으려는.

예취기를 가져왔다.

큰길에서 500미터 넘어 되게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큰 배낭을 메고 작은 배낭을 안고 한 번 오르고,

다시 예취기와 기름통과 공구가방 챙겨 다시 올랐던 어제였다.

화장실 자리부터 마련해두다.

길게 땅을 파고 흙을 덮어가며 쓸 수 있도록.

 

어제 새벽부터 움직인 데다 긴 길을 온 탓에,

바쁠 일도 없는 아침이여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

엊저녁에 하던 소리 연습, 오늘도 이어서.

이번 길은 베이스캠프를 살피는 것에 더해 소리 연습도 목적 되었네.

밤나무 밭에서 산장으로 들어오는 길 50미터쯤 길을 치고

집 둘레를 치다. 무성한 풀숲일 밖에.

어제 만난 오색의 구십 노모, 오목골 들어가서 잔다 하니

올해 유달리 풀이 짙다 걱정이셨더랬던.

 

부엌에 물이 흘러넘치니 살기에 다 된 거라.

어제 뒤란 너머의 샘을 치고 호스로 부엌까지 연결했던.

아주 더운 날 아니니 흘러들어오는 차가운 샘의 물이 냉장고로 쓰기에도 흡족한.

물에다 참외며 물통이며 우유며들을 띄우고,

흘러넘치는 물 아래로 반찬통이며를 둔,

아침을 먹고,

풀치고 몸을 씻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책 두어 장 읽었다.

어슬렁어슬렁 뒤란 언덕을 넘어 소나무밭 가로 가서 송이라도 있나 살피다가

밤을 주워와 삶았다.

나뭇가지들을 잘라 부엌문에다 오목이라 두 글자 썼다. 나뭇가지들을 이어 못을 친.

숯으로 벽에도 오목산장이라고 써두다.

오목산장’, 이곳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다시 어둠이 내렸다.

부엌 처마에 단 등 아래 밥을 지어먹고,

소리연습을 하고,

침낭에 일찍 들다.

큰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설악산 깊숙이 들어온 듯했다.

등산로 아니라 사람도 드나들 일 없는 곳이라 깊은 산이 따로 없네.

이번 9월의 설악행은 설악산아래에서 설악산에 든 걸음일세.

깊고 어둔 밤이다.

그러나 머잖은 곳에서 가끔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끼어들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78 3월 2일 예린네 오다 옥영경 2004-03-04 2292
6577 3월 4일 포도농사 시작 옥영경 2004-03-04 2290
6576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283
6575 3월 4일 포도밭 가지치기 다음 얘기 옥영경 2004-03-09 2281
6574 글이 더딘 까닭 옥영경 2004-06-28 2267
6573 6월 14일 주, 아이들 풍경 옥영경 2004-06-19 2262
6572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262
6571 6월 14일, 유선샘 난 자리에 이용주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19 2260
6570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243
6569 5월 6일, 류옥하다 외할머니 다녀가시다 옥영경 2004-05-07 2239
6568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옥영경 2007-11-21 2233
6567 운동장이 평평해졌어요 옥영경 2004-01-09 2233
6566 6월 10일 나무날, 에어로빅과 검도 옥영경 2004-06-11 2229
6565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228
6564 6월 11일, 그리고 성학이 옥영경 2004-06-11 2226
6563 처음 식구들만 맞은 봄학기 첫 해날, 4월 25일 옥영경 2004-05-03 2226
6562 5월 29일, 거제도에서 온 꾸러미 옥영경 2004-05-31 2224
6561 2007. 5.31.나무날. 소쩍새 우는 한여름밤! 옥영경 2007-06-15 2217
6560 6월 9일 물날, 오리 이사하다 옥영경 2004-06-11 2217
6559 2005.10.10.달날. 성치 않게 맑은/ 닷 마지기 는 농사 옥영경 2005-10-12 221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