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계곡 골짝에서 식당을 하는 분이 짬을 내달라셨다.
점심께 들리마 했다. 밥을 주셨다.
비가 내렸고,
멧골은 그러면 일이 멎고 여유로워진다.
몇이 모였다.
밥상은 술상이 되었다.
한 사람이 송이를 따왔다.
안주가 좋았다.
송이가 나오니 고기가 나오고 과일이 나오고 뭐가 또 오고.
전래동화의 한 풍경이 그랬더랬지.
고래 고래 적 배를 곯았던 한 계절 커다란 솥단지에 그저 돌만 넣고 삶다가
어느 집에서 뭐가, 어느 집에 또 뭐가 있다 꺼내와 넣고,
그렇게 맛난 국이 끓여져 온 마을 사람들이 푸지게 먹었더라는 이야기처럼.
뜻밖이었다. 그의 정서가 그럴 줄 몰랐네.
그가 부르는 노래로 그 사람을 들여다보고는 한다.
오늘 식당의 형님이 노래를 청하는데, 하하, 그 노래가 장사익의 ‘여행’이었더라.
서정춘 시인의 죽편 연작시 가운데 하나.(선생님 여여 하실지...)
안나푸르나 산군의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의 덮쳐오는 안개 속에서 불렀던 노래.
형님이 확 가깝게 느껴졌더라.
사람은 얼마나 많은 모습을 가졌는가.
그 한 부분은 나의 한 부분과 닿을 수 있으리니.
그러므로 서로 문을 열 수 있을.
우리는 접점이 참 없는 듯 보였으나
그렇게 노래 하나로 또 이어짐을 보았네.
그 댁이 이 골짝 들어온 지 7년 여.
남편 분은 산불감시단으로 활동하며 지역과 사람을 익혔다는데,
오늘 동석한 한 분에게 물꼬, 아니지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라.
“여자 혼자서...”
여자 혼자 들어와 사니 말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숱한 말을 했겠냐,
누구, 누구, 누구, 그 이름들을 들먹이며
그간 들었던 이야기들을 쏟는데,
안 들어, 혹은 못 들어 다행이지.
그걸 다 들었으면 어찌 견뎠으려나.
말이 많을 줄이야 알았지만 그 같을 줄이야.
혼자 대차게 살아남았다는 투였더라.
그래서 맞장구를 쳤더랬네.
“제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홀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나는 몰랐네, 그 말들을.
그러니, 말, 혹 그대를 향한 말들도 그저 스쳐 지나게 하시라.
모르면 그만임.
안다 해도 모르는 걸로 치기로.
말은 나를 해칠 수 없음.
나는(우리는) 그런 걸로 다치지 않음.
말, 그러거나 말거나!
저녁 7시 부녀회모임이 있었다.
가을나들이 건이며 두어 가지 의논하는.
근황을 나누고.
지난 모임에서 말이 나왔을 땐 나들이를 꼭 가자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일 많은 농사이고 보면 또 밀리는.
봄에 가기로. 하지만 12월 송년모임은 하자는. 그래보기로.
설핏 오해(라고 할 것까지도 아닌)가 대면을 통해 풀리기도.
그러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 사이 간극이란 참 쉽지 않은...
시간은 늘 없다. 시간은 내는 거다.
운동할 시간이 있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운동하려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
많은 일들이 그렇지 않겠는지.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늘 없으니, 시간을 내서 할 것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