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 자정, 올해 내려는 책의 표본 원고를 마감하다.
낮에는 삽화 하나도 왔다. 역시 샘플 삽화. 더하여 편집자한테 보낸.
종일 글을 썼다. 그리 말하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정작 책상 앞은 얼마 앉지 못했다.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앉았다 섰다,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아앉거나 방을 서성거리거나.
얼거리를 다 짜고 시작한 글도 아니었다.
일단 써나가면서 글 전체 가닥을 잡은. 그것도 여전히 윤곽이 희미한.
‘간절하게 피드백이 필요하군요!
이걸 샘플 원고라기에 퍽 허술하고, 그래서 민망합니다만’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물꼬의 교육이 현 주류 교육에 던지는 바가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물꼬라는 특수에서 어떻게 보편을 획득할 것인가가 큰 고민입니다.
담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긴 세월이었고, 마음이 자꾸 넘쳤습니다.’
그랬다. 마음이 자꾸 넘쳤다.
오랫동안 쓰려고 했던 글이었다.
우리 이야기니까, 잘 아니까, 쉬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채 몇 문장을 쓰지도 못하고 책상 앞에서 벌떡 일어나기를 수십 차례.
시작도 어려웠지만 나아가기는 더 어려웠다. 넘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속에 바깥 세상은 끊임없이 시끄러웠다.
교권과 아동권이 충돌하고,
장애아와 비장애아 권리가 반목하고,
남성을 ‘한남충’, 여성을 ‘김치녀’로 낮춰 부르며 서로 비방하는 20대들은
그 강도가 약해졌는 양 해도 말만 하지 않을 뿐 달라지지 않았다.
내 새끼만 귀해서 그 아이를 둘러쌀 우리 새끼는 보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키워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위해를 가하는 어른이 된 예도 넘쳤다.
지구는 자꾸 더워져 산불과 폭염과 폭우에 기후난민이 넘쳐도
지나치게 쓰고 사는 삶은 별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우리 어쩌다 이리 되었나, 도대체 우리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나?
그 책임에 교육에 있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나, 종국에는 교육이 져야 할 부분 아니겠는지.
그래서! 물꼬에서 하는 교육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9월 7일 편집자와 연락을 주고받았을 땐 당장 쓸 듯이 했지만
결국 닥쳐서야 써서 보냈다.
현재 생각하는 원고 분량은,
한 꼭지당 대략 A4 3p, 27꼭지 정도를 생각하니
전체 A4 81p, 200원고지 650장 정도.
삽화는, 표지 포함 15~20컷 정도 생각하는.
편집회의를 거치며 글의 톤이 비로소 정해질 테고
한가위 지나 10월 4일까지 초고를 넘길 생각인데, 생각인데, 생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