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오늘부터 엿새.

자잘한 살림들을 편안히 돌보겄다.

재봉틀을 꺼낸다.

천으로 된 물건들을 손보다.

대처 식구가 수선할 옷도 내민다.

낡았으나 잘 입는 옷이 있다. 식구의 바지가 그랬다.

지난해 낡은 호주머니에 빨간 바이어스를 대주었던 상아색 바지다.

그 바지 옆선이 터졌던. 짜깁기하다.

바짓단도 해어져서 잘라내고 덧대다, 비슷한 천으로.

옷방에서 나온 바지를 자른. 그 많은 옷들이 이리도 잘 쓰인다.

 

차례 준비를 하다.

명절 음식이야 차례를 지내지 않을 때도 했다.

집으로 가지 못한, 혹은 집이 없는 이들이 더러 물꼬에 인사들을 오니까.

보육원에서 계자에 오가며 자란 청년들도 더러 들리는.

올해 집안에서 기제사를 받아왔고, 제사가 있으면 차례도 있는.

집안 어르신들은 기자세만 챙기만 되었다성묘를 가니 추석차례는 말아라셨다.

하지만 물꼬 큰살림 살면서 그런 게 일도 아니거니와

하고 또 하면 익숙해지고익숙해지면 마음도 덜 어려운 것.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지난 7월 기제사를 지내며 세상에 더는 없는 이를 추모하는 일이 참 깊은 사람의 일이구나 했고,

시댁의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들과 뭔가 인연의 끈이 지어지는 것 같은 감동이 있었더랬다.

그걸 이어가는.

 

그리고 논두렁 분들께 누리집으로 한가위 인사 한 줄,

인사에 늦음과 놓침과 무심함과 불성실 들을 뉘우치면서.

비가 많았던 날들을 뒤로 한가위를 맞으며

시도 한 편 읽어드리고 싶었던;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장석주, '대추 한 알' 전문)

 

저절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시간,

혼자서,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 시간,

애쓴 우리의 날들도 가을로 왔겠구나 싶어서.

고맙다는 말이 참으로 큰 말임을 새삼 벅차게 느끼면서.

늘 등을 곧추세우게 하는 당신들이셨고,

건강한 마음과 삶을 잊지 않고 살고 있겠다 다짐했다.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이 저곳의 삶을 지지하는 길이기도 함을 환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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