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수행하다(수련하고 일하고).

 

흐리고, 으슬으슬 추운 흙날이었다.

설악산 대청봉에 눈 내렸다 했다.

3도까지 떨어진 새벽이었다.

움직임이 더뎠다.

학교아저씨는 가마솥방에 난로를 들이고 연통을 잇고 있었다.

해날은 해가 힘찼다. 1도가 더 떨어져 2도였던 아침이었지만.

수행하기 좋았다. 일하기도 좋았다.

 

한쪽에서는 들깨를 털었다.

여러 날 말렸던 들깨다.

도리깨까지 챙겼지만 그걸 쓸 만치의 양은 아니다.

천막을 깔고 그 위로 망을 깔고

한가운데 노란 컨테이너를 엎어놓고 들깨를 툭툭 치다.

잘 마른 들깨가 튀어나와 또글거렸다.

 

구두목골 작업실에서는 공구 정리가 있었다.

아래 지하실 창고까지 완성되기를 기다리자면 봄도 넘어갈 듯하여.

쓰자면 정리를 해야지.

그래 보아야 상자들을 한 곳으로 줄 세우고 그 내용물의 이름을 써두는.

하지만 일일이 헤매지 않고,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 물건들을 쓸 수 있으니까.

그만큼 빈 공간이 좀 확보되고.

그리하여 작업 공간이 그만큼 늘어난.

 

사이집 마당에서는 올해 마지막 잔디깎기였다.

잔디깎이가 돌아가고, 갈퀴로 긁고 있었다.

근래 주기를 짧게 깎아주는 잔디여서

일이 금세 끝났다.

5단 높이까지 있는 길이 조절에서 1단에만 맞추고 해도 되었다.


울타리 너머 경사지의 풀도 벴다.

낫들부터 잘 갈았다.

도구가 일을 하지.

칡넝쿨이며 한삼덩굴이며 감아올라간 것들이 나무를 죽이겠더라.

마당의 편백 너머로 작은 바위들이 울을 이루고,

그 너머로 철쭉, 그 사이 가끔 측백들이 몇 그루 이어지기도 한다.

철쪽은 진즉에 뒤덮고, 측백도 거미줄처럼 덩굴식물들이 감고 있었다.

경사지 쪽의 막 자란 나무들도 키들이 높아 편백나무에 그늘을 만들기도 하고.

굳이 톱을 쓰기보다 낫으로 찍어 일하는 게 수월해요.”

언제 현철샘이 그러더니,

그 움직임을 보았던 대로 오늘 낫으로 찍어 나뭇가지 몇을 베 내기도.

굵은 나무 하나는 톱질을 해서 넘어뜨려 그늘을 줄였네.

 

어린 편백들이 쇠지주대를 기대고 서 있기 여러 해,

이제 제법 굵어진 그들이었다.

오늘 그 지주대를 빼내다.

이제 제 힘으로 충분히 살아낼 때 된.

자란 아이를 떠나보내듯 내가 다 서운함이 들더라.

 

사람이 모이면 자는 것도 일이고 먹는 것도 큰일이라.

한 저녁 밥상에는 생선찌개가 올랐다.

풋호박을 굵게 썰어 범벅처럼 넣었다.

전라도에서 받았던 밥상에서 보았더랬다.

모두 달게 먹었다 했다.

그 끝에 달여낸 차도 좋았다.

보이차가 더없이 좋은 계절에 이르렀다.

 

볕이 좋은 한 때 푹신한 깔개를 놓고 그 볕을 쬐기도.

가을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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