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5.물날. 맑음

조회 수 430 추천 수 0 2023.11.25 23:50:03


겨울90일수행여는 날(준비하는 날).

절집의 동안거처럼. 추운 데다 낡은 학교인 관계로다가.

기본 교육일정은 돌아가지만 방문자의 걸음을 제한하는.

내부에서는 수행을 첫째 일로 삼는.

여럿이 시작할 땐 작은 잔치를 열고 흐름을 의논하고 소임을 정하는 결제.

절집에서 결제라면 벌써 수행을 시작하는 날일.

물꼬에서는 그 준비를 하는 전야제쯤?

이 수행 아니어도 일상의 모든 것이 수행 아닌 것이 없을지라.

뭘 그리 맨날 수행이시래요? 스님도 아니고...”

만사가 귀찮다가도 일어나게 하거든.”

오늘의 수행이 삶의 힘이 될 것을 안다.

내일이 2024 수능일이기도. 대배 백배를 더욱 간절하게 한 아침이었더라.

 

소시지빵을 굽다.

중간발효 뒤 반죽으로 프랑크 소시지를 감싸 가위로 자르고 모양 잡기.

비스듬하게 가위질을 해서 양쪽으로 펼치며 나뭇잎 모양으로 만드느냐,

한쪽으로만 펼치며 둥글게 꽃모양을 만드느냐.

그게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는. 하지만 딱 한 번만 보면 아는.

2차발효 50,

그 위에 다진 양파와 옥수수알을 섞어 얹고 핏자치즈로 덮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짤주머니로 뿌려주고 굽다.

 

이번학기 농기계수리센터 교육이 오늘로 갈무리.

눈이 많아 설에 들어와서 대보름에 나간다는,

백두대간 우두령 아래 설보름마을로 출장을 가다.

운반기가 멈춰있기 연료공급이 원활하게 해 움직일 수 있게.

엄청나게 곶감을 하는 댁인데

다행히 그 일 다 끝낸 마지막에 그랬더라나.

백두대간 금을 뒤로 하고 오는 길이 마지막날의 선물이 되었네.

 

읽자고 혹은 읽다가 둔 책상 위의 책들도 있건만

가끔 책장을 올려다보다가 눈에 드는 책을 뽑아들기도.

오늘은 신영복 선생의 <강의> 서문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

꺼내 그 쪽을 펼치다.

선생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다고.

당신의 할아버님이 누님들의 영어 교과서를 가져 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더란다.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세계관이라면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 속에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나아가 어떻게 사느냐, 무엇으로 사느냐를 말하는 것일.

우리는 어떤 역사와 사회 속에 살고 있고,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는가(행동하는가).

결국 오늘 하고 있는 내 반응, 살고 있는 삶이 내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일 테다.

나는,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를 다시 묻는 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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