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영하 4.

무섭게 내려간다던 추위였지만

어제 오후부터 조금씩 오르고 있었고,

바람 없어서도 그리 춥지는 않았더라.

게다 늦은 오후부터는 눈 대신 가랑비였네.

 

간밤에 배추를 절여놓았더랬다.

뒤집을 일 없이 해놓았다고 했지만 중간에 한번쯤은 확인을 해보아야.

이른 새벽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숨이 좀 덜 죽었기

소금을 조금 더 풀어 얹다.

 

오전에는 양념을 준비하다.

갖가지를 넣어 다싯물을 내고, 찹쌉풀을 쑤고,

마늘과 생강 빻고, 무와 새우젓 갈고,

쪽파와 갓과 양파 썰고,

고춧가루와 액젓을 개량해두고.

묵은 고춧가루도 이참에 다 털어내고,

나뭇잎 같은 이물질 들어간 소금도 걸러 쓰고,

얼려놓았던 찧은 생강 같은 것도 다 끄집어내 쓰기.

깍두기를 위해서도 커다란 무 다섯 개는 깍둑 썰기.

참, 올해는 북어대가리를 뺐다. 쓴 맛이 돌기.

대신 진돗개 제습이와 가습이 간식거리로 내주기로.

 

김장날은 부엌곳간도 정리하는 날.

선반을 닦고 구석구석 쓰는 것에서부터

저장식료품들을 다시 자리잡아주고,

콩이며 잡곡류도 빈 만큼 작은 통으로 갈고,

먼지 앉은 효소며 저장음식 병이며들도 닦아주고,

마른가루며 국수류들을 정리하고.

냉장고도 뒤집는 날.

김치류와 냉동칸을 전부 끌어내 정리하다.

그것이 겨울 계자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할.

배추를 건져놓고 바깥에서 화로에 불을 피워 굴을 구웠고(어제는 까서 굴국밥),

안에서는 수육을 삶아내다.

메주를 쑤고 고추장을 같이 담지는 않아도(작년도 재작년도)

모과청을 빼놓을 수는 없지.

채를 썰고 설탕을 섞고 유리병에 넣고.

이 역시 계자에서 아이들이 먹을거리.

 

이제 결정해야지, 서둘러 양념을 버무리느냐 영화를 보고 와서 하느냐.

읍내 작은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 다녀오다.

밤 시간으로 예매해놓고 그걸 기준으로 움직임을 정하기로 했던 것.

김장을 다 끝내려면 자정은 되겠다 했기.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있었고, 1979년 서울의 봄이 있었다.

10.26 18년 박정희의 장기집권이 무너지지만

12.12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이듬해 5.18로 서울의 봄은 막을 내린다,

19876월 항쟁으로 살아 오르기까지.

영화는 군사반란 시점을 재현한다. 그래서 영문 제목은 12.12라던가.

역사적으로도 큰 사건이었으므로 할 말이 많겠으나

영화를 보고 서로 할 말이 많았음은 영화를 다층적으로 보게 했기 때문 아니겠는지.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자칫 굵은 인물들을 대치시킨 단선구도로 가기 쉬웠으나

영화는 생각보다 두툼했다. 아주 작은 역할(일반병)들조차 잘 그려진.

저마다 한 생을 사는 것이므로. 

개인의 관심사 차이일 수도, 나는 작은 역에 늘 관심이 큰 사람이라.

,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익히 그 연기력을 모르지 않았으나

캐릭터를 참으로 다각도로 잘 쌓아냈더라

이재진의 음악도 훌륭했다. 군가 전선을 간다를 잘 활용한.

특히 엔딩크레딧에 울리는 가사도 깊이 다가오는..

숨 쉬는 산하, 봄이 온 전선,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 ...

마치 80년대 불렀던 민중가요 같았던.

 

돌아와 그제야 저녁을 먹고 배추에 양념 버무리기.

먼저 먹을 것들엔 듬뿍, 나중 먹을 거엔 조금만.

50포기는 그렇게,

나머지 38포기는 백김치로 담다.

올해는 땅에 묻은 김치오가리에 넣는 대신,

하하, 삼거리집에 있는 김치냉장고를 쓰기로.

실어가 쟁이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손들을 털었더라.

 

며칠 뒤 들여다보며 간 보고 겉잎 덮을 때

싱겁다면,

김장에서 나온 국물에 굵은 소금 녹여 뿌리거나

육수(뭐 맹물이어도)에 소금(액젓이나 새우젓이나) 녹여 위로 뿌리기.

짜다면,

무를 툭툭 잘라 석박지처럼 김치 머리 쪽으로 사이사이 넣기,

혹은 생배추 알배기를 한 장씩 뜯어서 사이사이 넣거나.

 

내일은 구조진단팀이 오고, 설계팀이 다시 들어온다(1차: 11.25).

학교는 리모델링을 위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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