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었다.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날 소나기 같았다.
날도 푹했다.
번호를 붙여 일을 몰아 읍내 찍고 돌아오는 날.
1번 농협부터. 학교 통장을 정리할 일 있어서.
조합원들에게 생일 케잌과 소고기를 준다. 작년에는 조합장님이 손수 배달을 왔던.
오늘은 나갈 일 있으니 직접 찾겠노라 했다.
2번 차량점검. 여름계자 겨울계자를 앞두면 하는.
차를 끌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여름엔 민주지산 산오름으로 물한계곡까지 차를 가지고 가고,
겨울엔 혹 아이들이 다쳐 병원으로 갈 수도 있으니.
이곳 기사들은 20년을 넘게 본 이들.
커가는 아이들 안부를 묻게 된다.
오늘 우리 차를 맡은 이는 5년 2년 초등생을 둔 아비.
“이 맘 때는 케잌이 여러 개 생겨요.”
아이들 갖다 주라 오늘 받은 케잌을 건네다.
그래도 안은 들여다보고. 그래야 잘 먹었노라는 인사도 건넬 수 있으니.
생크림 위에 샤인머스켓이 잔뜩 올라앉았더라.
3번은 차수리센터 사무실에서 처리하면 되었네. 자동차보험 갱신.
4번 면사무소. 모래주머니를 받아오다.
“저희도 많이 없어서...”
모래주머니와 염화칼슘 가운데 선택하라기
효율은 염화칼슘이 좋은 줄 알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환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모래 다섯 주머니 실어와 달골 대문 앞에 부렸다.
면사무소 앞에 어쩌다(장날?) 보이는 포장마차 하나 있었다.
거기 면 부녀회 사람들 몇 어묵과 풀빵과 호떡을 먹다가
날 반가이 맞으며 사주시다.
그런 곳에 서서 이 골짝 사람들과 뭘 먹어본 게 처음이었다.
이곳에 깃든 지 서른 해가 다 돼 가는데.
마음이 참 좋더라.
(사람을)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 자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갔다. 첫해다.
오늘은 ‘생신문안’이라고 깜짝 놀랄 큰돈을 보내왔다.
그걸 어찌 쓰나. 모든 부모들 마음이 그러할 거라.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간다.
마음 좋기를(우리가), 평화롭기를(세상이), 그저 바라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