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영하 5도. 한낮 최고기온조차 영하 3도.
아침수행을 하고 마당에 내려선다.
발목이 빠진다.
깊은 산사에 눈이 내렸다. 길이 묻혔다.
수도승이 나와 눈을 쓴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더니 옷을 벗고 쓴다.
한 번씩 허리를 펴며 먼 산을 건너다본다.
다시 쓸다가 빗자루 방향을 바꾼다.
다시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본다.
그가 담긴 풍경이 곱다.
그렇게 풍경에 담긴 수도승 하나 되었는 양 눈을 쓸었더라.
주춤하더니 계속 내리는 눈이었다.
저녁답에 다시 눈을 쓸었다.
한 번 쓸어놓았던 눈자리라
오전에 두어 시간 걸렸던 일이 40여 분이면 되었다.
눈 쓸다 하루해가 다 졌네.
7학년 학교거부아를 위한 상담.
다문화가정,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가 양육하는.
엄마가 한 전화도 아니고 물꼬를 아는 지인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고 나선.
“아이를 만나야 뭐라도 해보지요.”
“그런데 엄마 말을 도무지 안 듣는데...”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아이와 엄마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전하다,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담이 이어질 수 있는가를.
아이도 엄마도 만나보고, 그래야 갈등의 지점도 찾아 길을 열고,
아이의 배치도 조언할 수 있을.
원고 교정 하나 본다.
훌륭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담긴 그릇이 너무 거칠어 음식이 미웠다.
거친 문장에 슬며시 짜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주장이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일방적이고 강경하다.
교정자에게 너무 많은 걸 미뤄두었다 싶어 되돌려 보냈다.
‘유하게, 그러나 할 말 다하는.
물론 때로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이번 글의 경우는 아니구요.”
몇 시간 뒤 글이 다시 왔다.
‘보니까 같은 단어 사용한 게 엄청 많더’라며,
‘섬세하게 천천히 다듬는 게 어렵’더라 한다.
그에게 하는 말들은 결국 내게도 하는 말.
읽어보면 대체로 나아진다.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