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해날. 흐림

조회 수 417 추천 수 0 2024.01.07 10:49:25


겨울90일수행.

지금은 겨울계자 준비기이기도.

본관 창문틀을 닦으며 해를 보낸다.

미리모임에서 샘들이 하기도 하나

샘들이 많지 않은 이번 계자인데다

갈수록 밖에서 들어오는 이들이 하는 일의 강도 혹은 수위를 낮추고 있는.

예전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요새 사람들이라던가.

자신의 삶터를 떠나 멀고 깊은 골짝까지 와 고생하는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지독한 이곳의 겨울이니까 더욱.

하기야 선풍기도 거의 쓰지 않는 여름이라서 또한 그러할.

 

삼거리집 창 아래 꽃밭을 만들었다.

아들이 도왔다.

꽃피우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은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가는 멧골의 겨울.

돌로 둘러치고 모래흙을 깔고,

달골에서 커다란 빈 화분도 내려 거기 플라스틱 꽃을 함박 꽂고,

인형 둘(철수와 영희)을 세워 그곳을 지키게 했다.

더하여 유리병 하나도 두다.

시멘트 바른 마당 바닥도 고르지 않은 창고 같은 그곳이 조금이나마 환하라고.

 

해가 간다.

마을에서 늘 마음을 써주는 분들께 인사도 건네다.

여기 자리를 틀기 시작할 때부터 물꼬가 기대고 산 형님네와

도시에서 고향 동네로 내려와 때때마다 푸성귀며들을 건네주는 형님네.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를 건넸고, 새우를 좋아해서 새우를 드렸다.

막 쑨 두부로 답하기도 하셨다.

우리가 안 하고 있으니 그걸 또 누군가가 하여서 그리 건넨다.

어찌나 고솜하던지.

 

치마가 이물없다.

밭일 할 땐 바지 입는다.

겨울이면 치마가 더 편하다.

그 안으로 몇 겹의 옷을 껴입어도 부담이 없어서인가.

치마란 게 붙는 치마가 아닌 바에는 대체로 몸을 감춰주어 그 또한 좋다, 하하.

20여 년 전 어느 겨울 무식한 울엄마

치마 아래 입으라고 건네준 속곳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속속곳. 속바지를 입고 그 위로 입는 속 반바지.

그거 입고 안 입고의 차이가 매우 컸다.

오래 입었던 만큼 고무줄이 늘어나 자꾸 흘러내렸다. 대충 걸치고 지냈다.

엉거주춤할 때가 잦아지더니 이 겨울을 나자면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허리에 흰색 밴드고무줄이 세 줄이었다.

물꼬 교무실 곳간에 있기는 하였으나 오래 쓸 일 없어 다 늘어져버렸다.

상자 안에는 대신 검정 고무줄과 노란 고무줄이 있었다.

물꼬는 찾으면 뭐라도 있어 좋다. 화수분이라던가.

노랑고무줄을 세 줄로 끼웠다.

하이고야, 이리 편할 수가, 이리 몸이 가벼울 수가.

작은 변화가 얼마든지 우리 삶의 만족도를 바꿔준다.

하기야 산골 일에 손이 터서 까시래기 하나 일어난 것만 잘라주어도

한 생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지.

그러니 오늘은 그대도 자신을 불편케 하는 한 가지 제거하기 해보실 거나.

속속곳이 새것처럼 되어 새해를 끌어오네.

2월에 인도로 가는 길에 들리려는 한 공동체에

30년 넘어 깃들어 사는 인연이랑 소식이 닿았다.

그가 해를 마무리해주었을세.

안녕, 내가 산 또 한 세월, 그대가 산 또 한 세월, 우리가 살아낸 또 한 세월!

생이란 게 참... 자꾸 힘을 내야 하더라.

힘내며 또 한해를 마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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