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수행을 한 뒤부터 늦은 밤까지 손전화를 곁에 두었다.
173 계자 부모님들과 통화하자고 한 날.
(간밤에 계자 기록을 누리집에 마저 올렸고, 아이들 갈무리글까지 덧붙였다.)
아이가 잘 돌아왔고 기록글과 사진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굳이 통화하는 게 부담스러운 분도 있을 수 있어
근래에는 물꼬로 전화를 주십사 하고 있다.
오전에는 드물고, 가끔 오후, 그리고 저녁과 밤으로 몰린다.
오늘도 그러했다.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돌아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의 ‘지금’을 말하며 혹 부모의 양육에 보탤 게 있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얹기도 한다.
형제를 키우는 댁에는 큰 아이에게 힘을 좀 실어주자고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아이는 좀 헐렁헐렁하게 도와주자 제안하고,
그리고 자폐경향성 아이를 키우는 댁과는 매우 긴 통화가 있었다.
애쓰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과 애씀을 헤아리고 싶었는데,
혹 멀리서 하기 쉬운 말만 한 건 아닌가
돌아서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사망과 임종 연구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의 죽음의 5단계 이론처럼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장애를 가진 이가 있으면 그 단계 역시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들을 거친다.
당연히 이것을 꼭 차례대로 겪는 것도 아니고
지났던 단계로 얼마든지 돌아가 다시 거치기도 한다.
엄마가 (먼저) 좋고(행복하고) 엄마가 단단해야 한다, 이 말 역시 하기는 또 얼마나 쉬운 일일진가.
장애를 둔 부모의 소망은 대개 한결같았다. 아이보다 하루 뒤에 떠나는 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한편 비장애아들이 장애들과 어우러질 수 있게 하고,
나아가 부모가 늙거나 죽어서 더 이상 장애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
그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이 사회가 되는 데
물꼬 역시 힘을 보태고자 애쓰고 있다.
중요한 건 늘 ‘정말 (그렇게)움직인다’는 것!
물꼬는 (그렇게) ‘한다’!
마지막 통화를 끝내고, 영화 하나 보다; 스페인 영화 <Society of the Snow;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1972년 10월 13일부터 12월 22일까지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던 비행기에서
45명 가운데 16명이 생존한 기록.
어린 날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던, 인육을 먹고 버텼던 그들이
이후 정말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었는가를 걱정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화에는 산 자의 말이 아니라 죽은 자 누마의 말로 나레이션이 흐른다.
죽은 자의 역할(시신이 산자를 살리는 먹을거리로)을 단순히 소모하지 않고,
죽은 자의 이름자들이 기록된다.
날마다 걷고 날마다 뛰겠다, 자막이 오를 때 한 생각이다.
그랬던 난도는 다른 한 인물과 함께 눈 덮힌 안데스를 꼬박 열흘 나아가 구조된다.
아이들과 겨울산을 오를 때면
때마다 산행 대장으로서의 각오와 무게가 만만찮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거친 겨울 산오름이었고,
지금은 요새 아이들은 약하다는 전제를 고려하고 덜 힘든 길을 택하지만
아이들과 들어서는 겨울산의 긴장은 결코 그 밀도가 낮지 않다.
혹여 무슨 일인가 생긴다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어깨에 다 짊어지고 오고 말리라,
온 몸에 그리 새기며 아이들을 뒤에 달고 걷는다.
나이 들며 그 힘이 언제까지 주어질까 가늠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방법 없다. 날마다 수행하고, 날마다 걷고, 날마다 뛰고 있겠다.
그리고 물꼬에서 지내게 될 발해1300호 26주기 추모제의 변;辯을 썼다.
1.
집안의 막내라 허락에 까다로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작년부터 집안의 제사를 가져와 지내고 있습니다.
절에다 모신다 하기에
지내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내는 거면 저희가 하겠다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좀 나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제사를 지내느니 마느니, 옳으니 그르니,
다 각자 생각대로 할 일입니다.
그게 의미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형편 되면 하고 아니면 못하는 것 아닐는지.
명절이 의미 없으면 대안가족 그런 변화도 얼마든지 환영할 일입니다.
그저 관습에 끌려 우리 현재의 삶이 고단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
첫 기제를 지내며 뭉클하였습니다.
시어머니 한 분을 빼고는 얼굴도 모르는 네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 뭔가 귀한 인연이 맺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리는 일에
아, 깊고 깊은 사람의 일이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예전에 잘 몰랐던 마음들입니다.
젯밥과 함께 차도 달여 올리고, 꽃도 띄워 올리고...
제사가 즐거운 이벤트가 된 거지요.
그것에는 그저 주어진 일이 아니라 선택했다는 점에서,
또 ‘자유학교 물꼬’라는 큰살림을 하며 일이 손에 익어
상을 차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겝니다.
3.
‘뗏목 발해 1300호’는 제게 의미가 있습니다.
장철수 대장은 이문동에서 몇 해 나눈 우정이 있기도 하며,
몇 개월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던 뜨거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거의 잊혀졌던 그가 뗏목탐사대 좌초로 다시 불려왔고,
그 해는 탐사대원들을 떠나보내고 저희 집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의미가 남달랐듯 또 누군가에게 그럴 테지요.
그들이 온전히 온 삶으로 옳은 행적만을 살았다거나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 한 그들의 행위가 뜻 깊었고, 훌륭했다 여깁니다.
그걸 기리고자 합니다.
그들이 떠난 세월 내내 제 가슴에 그들을 새기지만은 않았을 겝니다.
그렇지만 결코 잊히지도 않은 그들이었습니다.
4.
집안 어른도 30년 제사 지냈으면 할 만큼 했다던가요.
30주기까지는 제를 지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훌훌 떠나 보내드리고픈 산 자의 소망이 있습니다.
5.
먼 걸음이실 터이니 밥과 잠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1월 19일 저녁밥과 20일 아침, 그리고 제상과 낮밥을 나누겠습니다.
오신다면 기쁨이겠지요.
멀리서도 마음 나눠주시기를.
다들 계신 곳에서 아름다움 삶이시기 바랍니다.
부디 청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