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5.나무날. 맑음

조회 수 255 추천 수 0 2024.02.07 23:57:42


겨울90일수행 중.

변산자연휴양림에서 밤을 나고, 아침수행을 하다.

어제 동학모임에서 이틀 만행을 나섰더랬다.

우리끼리 동학 만행이라 부른다,

스님들이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그리 일컫듯.

어제는 군산 옥구농민항쟁이 중심이었고,

오늘은 변산 바닷가를 따라

격포항-채석강-적벽강-고사포-변산해변으로 이른 길.

변산반도의 수천만 년 자연이 만들어낸 바위 절벽을 끼고 걷다.

 

마침 오는 길에 오래 전 깊은 인연이 닿았던 분의 산소가 있어

꽃을 두고 오다.

눈이 발목까지 쌓인 길을 헤쳐 올랐더니

그 사이 여러 기의 무덤들이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 또 죽고, 누군가 또 태어났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라도 죽은 이를 기릴 수 있으나

산소는 당신들의 집이라 마치 누구네 집을 찾아들듯 안부 여쭙고 나왔네.

 

진안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한 분 댁에 들리다.

두어 해 전이었다던가, 동학모임 인연들이 지리산이며 한 바퀴 돌고 오던 길에

그곳에 들러 차를 얻어들 마셨다지.

연락을 하니 연결이 바로 되었고, 같이들 또 들어간.

인가가 먼 곳이 아니라 좋았고(저자거리 속 수행?),

집 곁에 천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어

내 집 마당 나무 같아 깃들어 사니 좋겠더라.

산에서 약초를 캐 가공하여 돈을 산다고.

서로가 하는 수행에 대해 나누고

같이 밥 먹고 차를 마셨다.

좋으시냐 물으니 좋다 했다. 자유롭고 편하다고, 하고픈 대로 하고 산다고.

그럼 되었지.

그러자고들 돈도 벌고 뭔가 애도 쓰고 그러지 않는가.

 

밤에는 인연 하나 챙기다.

벗의 아이이고, 물꼬 계자 아이이고, 물꼬를 언덕으로 잠시 기댔던 아이,

엄마의 나라로 가서 자랐고, 대학을 가게 되었다.

한국의 서울대 같은 곳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했다. 고마웠다.

대학을 가면 계자에 와서 손을 보태겠다는 아이였다.

물가가 싼 그곳이다. 등록금을 보태고 싶었다. 그저 한 귀퉁이 보탰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관계에 대해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최선 같은 거랄까.

내가 그럴 수 있을 때 그걸 받을 수 있는 그이니, 그의 복이라.

물꼬가 하는 작은 나눔 하나.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네.

기쁘다거나 슬프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라

꽃이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다시 돋는 그런 자연이라.

하루를 모시고 빚어 보내고, 또 하루를 모시고 빚어 보낸다.

날마다 오늘을 산다. 내일도 오늘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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