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지난 지는 좀 됐겠고, 두 돌은 안 된 듯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그리듯 해찰하고 있었다.

곁에 엄마가 서 있고.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다가가 그 아이랑 같이 바닥에 그림을 이어 그렸다.

이름을 물으면 엄마가 대답한다.

지후 이름도 써볼까?”

한 글자 쓰고 따라 읽게 하니 발음은 아직 두 돌도 안 됐겠다.

그러고 놀고 있는데 곁에 서 있던 엄마가 무어라 하자,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일어나 엄마를 막 밀쳤다.

가라는 거다. 지금 재밌다 이거지.

둘이서 바닥에 뭔가를 긋고 그으며 한참 놀다 일어섰다.

 

돌은 지났고, 역시 아직 두 돌은 안 되겠는 아이였다.

아빠에게 안겨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좀 힘들었던가 아빠가 아이를 내려 걸렸고,

끌리다시피 걷던 아이가 불과 얼마 뒤 아빠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안아달라는 거겠다.

곁을 지나다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에게 얼굴을 묻었다

이름을 물으니 아빠가 일러준다.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

태윤아, 다리 아파서 아빠한테 안아 달랬지?”

애가 배시시 웃었다.

내가 아빠에게 그러는 거 다 봤구나, 그리 알아먹은 표정이었다.

같이 웃고 그들을 지나쳐 먼저 걸었다.

 

겨울 수목원 걷기.

아침수행 뒤 국립세종수목원으로 향하다.

축제마당 잔디에서 아장거리는 아가들을 보다가

세 관으로 이뤄진(붓꽃 모양) ‘사계절전시온실로 들다.

온대중부권역 식물자원의 보전과 한국정원을 주제로 했다는 도심형수목원.

그래서 온대중부권역 식물자원을 대표하는 수종으로

습지, 평야, 하천 지역에서 잘 자라고 원예종으로도 많이 볼 수 있는 붓꽃모양으로 만든 온실.

날이 푹한데다 온실이라 겉옷을 보관함에 넣고 움직였다.

지중해식물 전시원부터 들러 32m 높이 전망대에 올라 수목원 전체를 관망하다.

도심형이라 그 규모면에서 숲이나 산을 이루는 수목원들에 견주면,

2016년 착공, 2020년 개장이니 다른 곳의 역사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으나 수목원이 있다로 보자면 한없이 반가운 공간.

이 전시원은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한다.

바르셀로나에 1년 머물 당시 가을에 하루 종일 그라나다를 걸었더랬다.

알함브라 궁전의 가을볕을 잊지 못한다. 그야말로 ever!

지중해 풍경으로 충분히 좋았겠는데,

알함브라 궁전을 떠올리자면 아쉬움이 남아버리는.

올리브나무도 올리브나무지만 부겐빌레아가 매우 반가웠다.

덩굴성관목으로 지중해권에서 골목길을 걷노라면

담을 타고 오른 여러 색의 부겐빌레아를 볼 수 있었다.

환영이라는 그 이름답게 환영의 덩굴 같은.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공룡의 먹이라고도 불리는 화석 울레미소나무,

시어머니 방석이라는 금호선인장, 케이바물병나무도 눈에 확 들었다.

나오기 전 마지막 나무 아래 바닥에는 아이비가 심겨져 있었다.

아직 덩굴이 뻗지는 못하고 한 포기씩.

시간 지나 이것들이 넝쿨진 풍경을 보는 날 오겠지.

 

열대온실’.

데크길을 따라 나무고사리, 알스토니아, 보리수나무들이 줄을 이었다.

알스토니아 스콜라리스는 다 자라면 키가 32m,

그래서 이 온실 천장이 높다지. 소원을 이뤄주는 악마 같은 천사라나.

탄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커 지구 온난화 방지의 대표적인 식물이라는 맹그로브,

개구리의 알과 올챙이를 위한 탁아소 역할을 한다는 브로멜리아드.

빅토리아수련은 알길 없었네.

꽃이 밤에 피어 밤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잎에 사람도 올라탈 수 있다는데.

하룻밤 피고 진다던가.

식충식물은 팻말은 보이는데 두리번거려도 뵈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전시온실’.

이번 주제는 신비한 마법의 식물사전.

포인세티아와 백묘국, 시클라멘으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중심으로 향하면

누구라도 우리 시대의 마법학교는 해리포터 마을이라 자연스레 그리 연상할 만한 곳이 이어진다.

식물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도 했다.

약사 의사 제사장 마법사 연금술사 현자들도

주술과 예언, 보호의 효력을 보이기 위해 식물을 이용해왔고,

그것에 얽인 이야기들을 담은 전시.’

그쯤의 설명.

특히 ‘4장 마법사의 연구실공간을 아이들이 퍽 재밌어 했다.

세익스피어의 <맥베스>에는

스코틀랜드 덩컨 왕의 반란군을 무찌르고 돌아오던 맥베스와 벤쿠오가

세 마녀를 만나는 대목이 있다.

마녀들은 마법 물약을 먹고 맥베스의 미래를 예언한다.

그 물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페니 뱀 필레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굽습니다.

도룡뇽의 눈과 개구리의 발가락, 박쥐의 털과 개의 혀,

독사의 갈래와 눈먼 벌레의 독침, 도마뱀의 다리와 올뻬미의 날개, ...”

식물들의 이름을 위장하기 위해 이리 쓰였다는데,

페니 뱀 필레는 인도순무,

도룡뇽의 눈은 겨자씨,

개구리 발가락은 미나리,

박쥐의 털은 호랑가시나무,

도마뱅의 다리는 아이비,

올배미의 날개는 사리풀, ...

바로 이 사리풀도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었더라.

 

겨울이라 스산할 만도 하나 온실 식물들로 풍성했고,

겨울이지만 초록이 주는 풍성함과 또 다른 마른풀이 주는 담백함도 좋았다.

또한 다른 계절을 짐작해보는 것도.

다른 때 다시 오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지중해식물 전시원을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브로,

궁궐정원을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주합루를 본따 만들고,

별서정원에 담양 소쇄원을 담았다고 했는데,

새로운 뭔가를 해봐도 좋았으련. 이곳만의 무언가를 말이다.

 

17시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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