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눈 내리는 아침이었다.

해건지기.

몸을 풀고, 대배 서른세 배를 하고, 호흡명상.

나흘 동안 묵은 공간 청소. 자신이 잔 방 중심으로.

이불 정리하는 법 안내하겠습니다.”

갈래진 쪽이 아니라 덩어리로 매끈한 면이 보이도록 정리하는 법도 안내하다.

(나중에 햇발동을 들여다보니

욕실화가 저 멀리 던져져있긴 하여도

안내했던 것들은 하려 한 흔적들로 잘 남았더라.)

 

도시로 나가기 위해 씻기.

대해리 사람에서 도시 사람 되기.

아이들이 짐을 꾸리는 동안 먼저 내려와 아침을 차리다.

눈 소식에 계곡에 차를 두고 올랐던 어제여

아침은 아이들도 눈을 헤치며 걸어 내려올 것이었다.

마지막 끼니답게 만찬이랄까.

보슬보슬한 냄비밥에다

미소된장국과 나물들과 동그랑땡을 빚어서 부치고, 싱그런 야채와 함께 고기볶음도.

후식으로 천혜향을 놓다.

 

영화 시간에 맞춰 대해리를 나설 것이었다.

자투리 시간을 새 책들을 잡아 채우고,

갈무리모임을 하고 나서자 눈이 멎었다, 하하.

읍내 작은 영화관으로.

폴 킹 감독의 <웡카>.(촬영감독이 정정훈)

친구들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여기 오느라 못 가게 돼 조금 아쉬웠더니 딱.

보고 싶어 했는데 딱.

그렇게들 정말 딱 본 영화.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 이전의 이야기.

티모시 살로메는 대세 배우가 맞는.

아이들은 이 배우를 더 좋아했지만,

나는 팀 버튼 감독과, ‘길버트 그레이프이후 모든 순간의 조니 뎁을 기억하는 세대라.

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 시작했단다. 그러니 꿈을 잃지 마.”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픈, 아니 우리 모두가 품고 싶은 이야기.

네가 초컬릿을 세상과 나눌 때 엄마도 함께 있겠다고 했다.

엄마의 마지막 초컬릿을 그를 도운 친구들과 나눠먹을 때

사람들 사이를 스쳐가는 엄마를 보는 웡카.

엄마가 준 초컬릿 안에서 나온 카드는,

중요한 것은 초콜릿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란다.’였던가.

웡카는 누들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읽게 되고,

누들은 웡카로 엄마를 찾은 딸이 된다.

웡카가 들고 다니는 휴대용 초콜릿공장은 정말 정말 최고였네!

 

마음 잘 부린 나흘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2024학년도 겨울을 연습해보았는지도.

겨울 계자를 3주로 계획한다. 다시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는 겨울 한 번 만큼은.

앞 두 주는 학교와 달골을 오가며 적은 규모로(‘외가 가는 길’),

마지막 한 주야 여느 계자처럼 보낼(175계자).

이번 실타래 아이들이 기획단이 되어주었더랬다.

벌써 힘차게 올 한 해를 다 살아낸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기운이란 게 그렇다.

그들을 믿고 또 해보겄다.


아이들이 떠나고,

읍내를 나간 걸음에 아들과 한 형님 댁에 인사를 드렸더니

손수 만든 두부에다 부각이며를 손에 들려주시었네.

현철샘 들어오고, 어른들 몇 모여

학교 중앙현관 처마 아래 화로를 피우고 고기며 해산물을 굽다. 눈은 내리고...

굴국밥을 끓여냈다. 개운하기가 겨울 저녁밥상으로 최고였다.

그야말로 2023학년도 마지막 일정을 끝낸 식구들이었다.

푹한 겨울이라 하여도 결코 쉽지 않은 멧골 모진 추위라.

큰 탈 없이 흘렀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모다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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