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엄마의 메일을 받는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를 위해 줄

좋은 글귀를 하나 보내달라는데,

찾자면 또 얼마나 흔할 좋은 글들이겠는지.

이 변방 깊은 곳에 사는 물꼬가 뭐라고 우리 존재를 확인시켜주시었네.

긴 말을 할 처지도 아니고 그저 두어 문장과 함께 오직 기쁘게 사시라하였다.

헤르만 헤세의 시 어딘가에서 그랬지,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이라고.

기쁨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그런데 그 답 메일은 그 딸을 위한다기보다 어머니를 위한 글월이라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기쁘면 딸도 엄마를 좇지 않겠는지.


과일이 거의 떨어지지 않는 물꼬 부엌이다.

지난 한 달 가까이 인도에서 머물다 왔다. 물가도 싸거니와 과일은 더 싼.

넘치는 과일을 달고 있다가 왔으니

사과 11만 원이 넘는 가격은 가격표의 숫자를 자꾸 다시 세게 했다.

왜 이리 비쌀까?

작황이 나쁘면 비쌀 밖에.

뭐 농사란 게 올해 나쁘다고 내년에 나쁜 것도 아닐.

그렇더라도 어느 정도여야지. 왜 이다지도 비싼 걸까?

기후위기? 기후요인이라면 전 세계가 같이 겪는다.

몇 해째 벌이 줄고, 수분을 못해 사람이 붓으로 꽃가루를 묻혀주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몰랐던 사실인데, 한국의 농산물 가격은 좀 특이했다.

서울이 제일 싸물건도 젤 좋아.”

스무 살 무렵 한 선배가 했던 말은 오래 잊히지 않았더랬다.

보통 생산지에서 생산자들이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여느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90% 가까이 서울의 공영도매시장, 그러니까 소비지에서 가격이 결정된단다.

1985년 만들어진 경매제도.

모조리 가락시장에 모인 농산물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며 또 경매, 경매.

내려가며 유통비가 붙다보면 때로 생산지가 더 비싸지게도 되는.

가락시장의 공영도매시장에는 다른 거래제도가 없다.

농안법 시행령으로 직거래도매상이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뒀다고.

아니다, 법으로는 있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워 결국 하지 말라는 말이란다.

농협 포함 6개 청과회사의 대주주가 대기업. 그들이 독점적 수탁권을 가지는.

공영도매시장은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매매차익은 온전히 대주주의 몫이다.

그러니까 값이 높다고 농가가 그 혜택을 갖는 것도 아닌.

결국 독점구조의 폐해였다.

그러면 수입을 하면 되잖나.

검역조치며 그 과정이 또 길다네. 4, 5년 걸린다고.

문제는 이런 지점에서의 정책이다. 현 정부의 대응책.

소비 생산 유통 수입, 촘촘하게 살펴 정책을 내놓는 게 아니라

마치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는 일에 의대증원 2천 명 밖에 생각 못하고

또 그 여파도 모른 채 툭 던지는 정책처럼

이 역시 한 가지밖에 모르는. 수입하면 되지, 하는.

물가관리가 안 되는 거다. 무대책인 거다.

물론 이게 쌀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거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가끔 사과도 먹어야지!

물론 아쉽지만, 대체재가 없는 건 아니지. 사과 없으면 바나나 먹지.

그런데 그것마저 싸지 않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밥상 물가 관리에 대한 정부의 모자란 인식이다.

후쿠시마 원전 해양수에 대한 대응이 그 모양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그러니 사과 한 알 1만원 가격이 인재로 보일 밖에.

무능한 정부다.

이건 뭐 전문성이라고는 없다.

유통구조를 개선하거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거나 무엇도 없다.

마냥 올라가는 사과값으로

앞으로 우리 밥상이 더 열악해질 것을 내다본다.

식량자급률도 떨어질.

정부 부재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음은 이제 국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614 계자 세쨋날 1월 7일 옥영경 2004-01-08 2069
6613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2053
6612 운동장이 평평해졌어요 옥영경 2004-01-09 2129
6611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188
6610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169
6609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509
6608 계자 일곱쨋날 1월 11일 옥영경 2004-01-12 2092
6607 계자 여덟쨋날 1월 12일 달날 옥영경 2004-01-13 1803
6606 계자 아홉쨋날 1월 13일 불날 옥영경 2004-01-15 1757
6605 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옥영경 2004-01-16 2231
6604 계자 열 하루째 1월 15일 나무날 옥영경 2004-01-16 2106
6603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285
6602 계자 열 사흘째 1월 17일 흙날 옥영경 2004-01-28 1762
6601 계자 열 나흘째 1월 18일 해날 눈싸라기 옥영경 2004-01-28 1882
6600 38 계자 갈무리날 옥영경 2004-01-28 1644
6599 새해, 앉은 자리가 아랫목 같으소서 옥영경 2004-01-28 1767
6598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36
6597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333
6596 39 계자 첫날 1월 26일 달날 옥영경 2004-01-29 1763
6595 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옥영경 2004-01-30 201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