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21.나무날. 맑음

조회 수 400 추천 수 0 2024.04.10 02:23:02


어느 자리에서는 가르치고, 어느 자리에서는 배우는 판소리다.

이번 학년도도 소리 수업이 있다.

한 학기 3개월, 한 해 여섯 달, 달에 두 차례.

산속에 집중 소리연습을 하러 들어가지는 못해도

조금 떼는 걸음처럼 그리 해나갈.

 

새 학기 판소리 첫수업이 있었다.

소리 한 대목을 주었다.

오래 해왔던 할머니들인데, 기억을 못한다 못한다 해도

어느새 또 한 소절이 만들어져 있다.

녹음한 것을 날마나 듣는다고 했다.

날마다’ 쌓이는 것의 놀라움이라.

 

소리 한 대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를 데가 없는데 옥선생 땜에 부르네.”

하도 하고 하여서 몸에 붙은, 아니 몸에 밴 소리를,

그래서 툭 누르면 자동으로 나오는 소리인데

더러 가사를 잊는 선생님,

부를 데가 없어 잊히는 소리...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받아두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내뱉는 말처럼 들려주려 한다.

 

다인(茶人)들이 물꼬에 찾아들면 더러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보이고는 한다.

황궁다법 시연도 하고, 차를 가르치고 찻자리를 주관하는 사람이

기물(다구)이 어찌 이리 없는가 하는.

정작 이곳에는 일년 내내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찻잔도 있는 걸.

들차회 같은 때 꼭 필요한 게 있을 땐(드물지만) 다인들에게 빌리면 되는.

다른 다인들에 견주면, 없지만 넘친다.

같은 예술단에 있는 미순샘이 오늘 무쇠 주수자(찻주전자)를 선물로 주었다.

꽃 장식이 된, 그 무거운 물질을 가볍게 보이게까지 하는, 아름다운 물건이다.

향로도 둘 내밀었다.

황궁다법 시연 때 빌려주셨던 건데 내게 쓰임이 더 좋으니 주신다는.

가게를 차려도 될 만치 많은 그의 기물들이나

넘친다고 주는 것이 아닐 것이며,

또 좋다고도만 받을 일도 아니었다.

다법 시연에 꼭 맞는 물건들인 거라.

물꼬에는 늘 그렇게 필요한 것들이 닿는다.

그는 남도의 김치며 생선을 물꼬 부엌살림으로 자주 내주시기도.

먼저 내주는 사람’,

그래서 나도 늘 뭔가 내주고픈 그이고,

나아가 누군가에게 나도 먼저 내주도록 하는 그이라.

고마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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