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마을을 내려갔다. 면소재지를 나가는 길.
아, 산모롱이를 돌자
계곡을 끼고 가는 길 양 쪽 산으로 진달래가 얼굴 내밀었더라.
산수유와 생강과 매화가 앞서 오지만
'진달래 사태진 골'의 시어 때문인지 연분홍 치마 같은 그 색감 때문인지
역시 골짝의 봄은 진달래로 오는.
우리 멧골은 봄이 한참 더디니
이리 나오지 않으면 서성이는 봄을 알아채기 쉽잖은.
어르신 한 분 뵈었다.
한해 두어 차례는 만나 말씀을 얻는다.
물꼬에 가끔 걸음을 하시기도.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당신이라. 기쁨으로 살고, 평화와 함께하는 삶.
“그런데 옥선생, 그 품이라는 거, 내가 원래 그리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야, 만든 거지.”
아드님 둘이, 하나는 천주교 사제, 또 하나는 판사.
그 아들들에 걸맞은 품을 가진 어른이 되려고 애쓰신다지.
사람 참 안 변하지만 우리 애쓸 수 있다!
내 품도 그리 넓힐 수 있으리.
찻집에서 어르신이 먼저 일어나시고,
저녁에 지역 도서관에서 할 일 하나 있어
가볍게 뭔가 먹어야겠다 하고 주문을 하려니,
그게 햄이 들어간 채로 만들어져 있는 걸 데워주는 거라네.
참,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토스트라도 해드릴까요?”
달라했다.
허브 차와 함께 나왔다.
차는 안 시켰지만, 나오지 않았으면 뭐라도 주문했을 것이다.
나오며 계산을 하려는데, 그냥 가래네.
지역 사람들인데, 아들이 하는 카페를 도와 아주머니가 같이 꾸린다는 찻집.
지역 인심이란 게 또 이런 거구나 하였네.
읍내에서 굳이 찻집을 갈 일이 드문데,
나오면 일을 여럿 몰아 일과 일 사이 시간이 뜨기라도 하면 차에서 책을 보곤 하였는데,
이 찻집에 앉아도 되겠다 했다.
3월 빈들모임 신청서 도착 마감일이었다.
이게, 왜 신청 마감이 아니라 ‘신청서’ 마감이라는 표현이냐 하면,
신청 통장에 이름은 적지 않은데 정작 신청서들이 드물었던 까닭이었다.
신청 마감은 진즉에 끝났던 일.
오늘 밤 자정이 마감이니 몸이 오겠다는 이들은 그 시간까지 신청서를 보낼 거라 여긴.
자정 지나 메일을 여니 더는 늘지 않았고,
영혼참가까지 열일곱이 모이기로 한 그대로.
'영혼참가', 몇 해 전부터 이런 말이 생겼다.
못 오지만 참가비를 보내는 걸로 지지 혹은 응원, 그리고 후원을 하는.
물꼬가 중심인 일정이라기 보다 특정 직업군이 모이는 거라
다른 빈들과는 느낌이 또 좀 다를 것인데,
그걸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신선해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