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28.나무날. 비

조회 수 379 추천 수 0 2024.04.18 09:49:15


맑았던 어제를 사이에 두고 그제도 오늘도 비다.

물이 많았다.

아침뜨락의 달못으로 드는 밸브를 열어두었다. 밥못이 넘치지 않도록.

골짝의 물은 밥못에 모이고, 흘러 달못으로 이른다.

 

가마솥방에 들어섰다. 봄의 질서를 아직 모르는 공간이었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부터 손에 댄다.

가지며 고구마줄기며 취나물, 묵나물을 삶아 담갔다.

거두고 다듬고 데치고 말리고, 거기까지만도 품이 많이 든 것들.

젊은 친구들은 별 관심도 없고 젓가락이 그리 갈 일도 없을지 모르지만.

다음은 묵은 먼지들을 턴다.

창가 다육이 있는 상은 틈날 때마다 화분 사이사이 먼지를 닦아도

다 옮겨내고 닦는 건 겨울계자 이후 처음인가 보다.

겨울을 났다는 뜻이다. 봄을 살겠다는 의미이다.

연명한 다육은 봄바람에 그 바람의 두께만큼 조금씩 살을 찌울 것이다.

그 사이 목숨을 다한 것도 있다.

뿌리를 덜어내고, 산 것들 가운데 가지를 떼어내 옮겨 심고.

컵 살균기며 정수기가 있는 쪽은 위에서부터 맨밑바닥까지,

철제 거치대 칸칸이도 닦아낸다.

행주와 수세미와 걸려있는 앞치마를 삶았다.

수저도 삶고, 수저통도 뜨거운 물로 부신다.

조리대 아래 받침은 엊저녁에 문지르고 말렸던 참.

양념통 바구니 깔개를 갈아주고,

선반의 먼지며, 쌓인 그릇들 가운데 가장 위에 올려져있는 것들도 꺼내 씻었다.

부엌의 그릇에 얹힌 겨울이 달아났다.

봄이 살포시 앉을 테다. 소리 없이 비밀처럼 건물 안으로도 들어올 테다.

 

잠시 숨을 돌릴 땐 책상 앞으로 가

물꼬 누리집의 물꼬에선 요새도 챙기다.

하루 기록을 올렸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처음이지 싶다.

이제부터 또 살겠다, 일하겠다는 결심의 다른 이름이겠다.

 

내일부터 사흘 3월 빈들모임.

한해살이에 없는 일정으로, 한 직군의 요청으로 이뤄진 일.

물꼬가 먼저 제안했던가...

그들이 이 변방까지 들어오는 일이 이번 같은 상황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마침 그들에게 맥없이 주어진 시간이 있었고,

그런 시간에 일이며 명상이며 수행 좀 해보면 어떠시겠냐고 물었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34 2월 9-10일 옥영경 2004-02-12 2082
6533 3월 15일주, 꽃밭 단장 옥영경 2004-03-24 2080
6532 3월 18일, 황간분재 김태섭 사장님 옥영경 2004-03-24 2080
6531 돌탑 오르기 시작하다, 3월 22일 달날부터 옥영경 2004-03-24 2078
6530 126 계자 나흗날, 2008. 8. 6.물날. 맑음 옥영경 2008-08-24 2077
6529 작은누리, 모래실배움터; 3월 10-11일 옥영경 2004-03-14 2077
6528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2075
6527 3월 30일, 꽃상여 나가던 날 옥영경 2004-04-03 2074
6526 5월 4일, KBS 2TV 현장르포 제3지대 옥영경 2004-05-07 2070
6525 125 계자 닫는 날, 2008. 8. 1.쇠날. 맑음 옥영경 2008-08-10 2068
6524 6월 2일 나무날 여우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5-06-04 2067
6523 3월 8일 불날 맑음, 굴참나무 숲에서 온다는 아이들 옥영경 2005-03-10 2066
6522 97 계자 첫날, 8월 9일 달날 옥영경 2004-08-11 2066
6521 4월 1일 연극 강연 가다 옥영경 2004-04-03 2058
6520 99 계자 이틀째, 10월 30일 흙날 맑음 옥영경 2004-10-31 2055
6519 98 계자 이틀째, 8월 17일 불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4-08-18 2051
6518 111계자 이틀째, 2006.8.1.불날. 계속 솟는 기온 옥영경 2006-08-02 2049
6517 128 계자 닫는 날, 2009. 1. 2.쇠날. 맑음.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9-01-08 2044
6516 시카고에서 여쭙는 안부 옥영경 2007-07-19 2043
6515 6월 7일주, 우리 아이들이 한 일 옥영경 2004-06-11 203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