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의 수업 또는 모임은

어른의 학교이거나 아이들의 학교이거나 또는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모이거나.

이번 3월 빈들모임은 어른들만 모인다; 전공의와 의대생들.

정부가 의대 2천 명 증원을 필두로 내놓은 의료개혁안이

외려 한국의 의료를 망가뜨릴 길인데다

자신들의 삶에도 위기와 실망을 느낀 전공의들이 사직을 시작하고 의대생들 휴학도 이어졌다.

2월이 갔고, 3월이 간다. 사직 전공의들은 뭐하고들 있는 걸까?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주 100시간씩 일하며 최저임금에서도 열외인 그들이,

수련에 필요한 일보다 가짜노동(잡일?)에 더 많이 바쳐지고 있는 그들이,

14만 의사 가운데 10%일 뿐인 그들을 갈아 대학병원이 돌아갔는데도

외려 돈벌레와 악마라는 소리를 들으며

사실 잘 알지 못하고(정작 의료영리화로 피해를 볼 이들은 국민인데) 던지는 돌과 화살에

상처를 입을 대로 입고 있었다.

그렇게들 엎드려만 있지 말고 일어나 움직이자.

이참에 수행도 좀 하고. 산오름도 좋겠고.”

그렇게 제안했던 참이다.

마침 감자를 놓을 때였다.

와서 몸을 쓰며 무엇보다 그들이 마음을 부렸으면 했다.

 

고마워라, 날이 갰다. 덕분에 맞이 준비가 수월했다.

달골 햇발동은 겨우내 들어가 있던 무거운 화분들이 밖으로 나와 데크에 놓였고,

마당의 주목에 매달려있던 성탄볼들을 내리고 닦았다.

그래도 빨간 공 하나씩은 열매처럼 다시 달아두었네.

아침 한참은 더딜 이 멧골 봄이라 스산도 하겠기에.

달골 기숙사 두 동을 다 털어냈다.

난방을 하고, 이부자리를 잡아주고.

겨우내 닫혀있었던 창고동은 4월 일정에야 문을 여는데.

따뜻한 곳을 찾아든 벌레들이 바닥에 그득했다.

그들도 한 생을 살고 갔고, 우리도 한 생을 산다.

 

걸음 종종거리는데, 모든 일은 한 번에 쏟아지지.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주는 건 또 아니라서.

비워줘야 하는 한 밭에서 묘목을 다 파내고 있었는데,

현철샘이 일하던 그곳에서 묘목들을 실어온.

그걸 심을 자리를 볼 짬을 내기는 어려워라.

일단 명상돔 곁으로 내려만 두었다.

화살나무며 팥배나무 국화도며 능수벚과 능수뽕, 보리수와 산수유, ...

주목은 덜 실어왔는데...”

족히 마흔도 넘지 싶었다.

사람들 들어왔을 때 같이 심으면 어떠냐 하지만

이번 일정에 거기까지 시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일수행을 중심으로 놓았지만

물꼬의 의도는 그들의 쉼을 더 마음 쓰고 있으니까.

다행히 비 소식 있으니

당장 사나흘 안에 처리할 일은 아니어도 되리.

빈들모임 끝내고들 하기로.

 

멀리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이가 비를 흠뻑 맞고 벗네 깃들어서 그만 퍼져버렸다.

열일곱 가운데 그를 빼고는 영혼참가를 포함 다 모였던.

가고싶은데못가서’, ‘부끄러운선배’, ‘응원합니다’, ‘응원’, ‘못가지만보내요’, ‘후원’, 그리고 개인 이름자들이 

등록비 통장에 찍혀있었다.

(영혼참가, 몇 해 전부터 이런 말이 생겼다.

못 오지만 참가비를 보내는 걸로 지지 혹은 응원 그리고 후원을 하는.)

정작 몸으로 온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여자와 남자, 사직의와 비사직의, 5병원의와 지방의, 의대생과 전공의,

80년대생 아이 둘 아버지에서부터 00년대생 의대생까지,

구색이 좋았다.

 

긴 저녁 밥상이었다.

영동역에서 오후 버스를 타고 들어온 이부터

황간역에서 내려도 들어오고,

퇴근을 하고 세 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오고, ...

모이는 데만 4시간이었던.

물꼬 한 바퀴’(학교 안내모임)는 내일 아침에 하기로.

 

실타래’,

햇발동 거실에서 둘러앉아 각자 안고 온 이야기를 꺼내다.

큰 사회적 현안과 함께 아주 미세한 개인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

삶은 그런 거였다, 거대 담론과 함께 일상 또한 있는.

사회학자와 상담사가 동행하다.

사흘 동안 끊임없이 돌아보기를 하며 자신을 돌볼 게다.

 

저녁밥: 잡곡밥과 시래기국, 말린가지볶음, 말린고구마순볶음, 콩자반, 달래김치, 배추김치, 불고기, 그리고 사과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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