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이다.
대개 날씨 좋은 봄날이고, 그래서 한식도 식목일도 이 께.
농사일도 고기잡이도 나서기 좋을.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겨우내 미뤘던 일들을 하기 좋은 날.
오늘은 잔 비에 젖는다만.
예술단 사람들과 한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때가 때이라 거리에는 총선에 출마한 이들의 펼침막이 나부꼈고,
악수를 청해하는 그들을 심심찮게 만났다.
한 패의 사람들이 횟집으로 들어섰다. 젊은 출마자였다.
그는 상마다 찾아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일행들과 나가려 문을 막 잡았을 때
누군가 외쳤다, 노래라도 한 자리 하고 가라고.
어, 이 양반 돌아서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
발림을 제법 하면서.
멋졌다. 그가 하는 소리가 그렇다기보다 (소리를)‘하는’ 그가.
그들이 나간 뒤 맞은편에 앉아있던 소리꾼이 말했다.
“배웠구만, 배웠어.”
그가 누구인지 검색을 해보게 되더라.
배우더라고. 문화예술계를 위한 정책을 내보겠다더라고.
사는 일이 늘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이다 싶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그것이 결국 어떤 걸 하게 되는 계기나 기회가 되는.
그러니, 늘 ‘하기’로, 하고 있기로.
소리꾼들과 앉아서 ‘맹성;盲聲’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히 심봉사 소리 때문이었고.
보이지 않는 자의 목소리라...
당연히 심청가에서 심봉사의 어느 한 대목을 다루었다.
‘지팽막대 흩어짚고...’
어르신 한 분이 말했다.
“봉사들은 이렇게 딱 더듬더듬 딱 가가지고 자기 느낌에 딱 잡혔다 하면 얼른 잡어, 습관이.
봉사들은 갈착철 때는(물건에 가까이 다가갈 때는?) 아주 점잖게 가.
그리고 딱 왔다라면(잡았다 하면?) 칵 잡어. (그러니) 봉사한테 잡히면 죽어.”
당신이 이해한, 그 대목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은 계속되었다.
“맹인은 적이 없어.
맹인이 성질내는 사람 없어. 항상 웃어. 왜냐면 약자니까, 상대에게 그러면 안 되잖어.
‘어, 그려,’ ‘그렇겠네’, 늘 그런다고(수긍한다고).”
당신은 청각장애인을 가져와 시각장애인을 더 설명해보고자 했다.
“맹인들이 인상이 좋아.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어쩌면 편해. 화내는 사람이 별 없어.
근디 벙어리들은 보이잖아. 청각장애인들은 인상 좋은 사람이 없어. 성질이...
(왜 아니겠어) 안 들리고 보이기는 하고...”
소리꾼도 그렇겠구나. 발화자의 삶과 감정을 이해해야 좋은 소리를 내겠네.
마치 배우들이 배역을 표현하기 위해 배역의 삶과 감정을 쌓듯이 말이다.
여태 소리를 해와도 그저 그 대목 안에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만 끌려 다녔다 싶더라.
어떤 분야에 더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봄나들이 같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