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14.해날. 맑음

조회 수 62 추천 수 0 2024.04.23 23:59:07


무방비로 온 여름 기온이다.

한가위를 지나며 덮치는 이곳 겨울인데,

이제 여름조차 걸음이 빠르다.

어제는 30도까지 오른 한낮이었는데,

오늘도 못잖았다.

 

내일 오라궈~~~~~’

내일이 내인생 젤 바뻐!!!!!!’

내일 도와주라궈~~’

‘9시에라도 오라궈~~~~’

그럼 10시에라도 왕간밤에 이어진 마을 아낙의 문자였다.

딱 필요할 때 도움 못 돼 미안하다고

요새 오른쪽 어깨를 좀 앓아서 팔을 못 쓴다고

안 가는 걸로 통화를 끝내고도 다시 문자가 왔다.

새참이라도 만들어서 들여줘야겠구나 하는데 또 문자.

딱 두시간만 도와줘도 큰도움 됨

한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

오죽하면 아프다는 사람까지 불러내야 할까,

학교아저씨랑 느지막이 가서 댓 시간 붙겠다고 했다.

 

10시까지 가자 하고도 그곳 일이 얼마나 넘치고 있으려나 싶어

다시 9시에 학교아저씨랑 만나자고 했다가

830분에 학교 대문에 기다리십사 했다.

그래놓고도 조금 이르게 달골을 나서 학교로 갔더니

학교아저씨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버섯 종균을 넣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2월에 벌목하다 어깨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했다는 그의 남편은

나무 하나를 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한쪽에 댓 명의 남자들이 참나무에 종균을 넘을 구멍을 뚫거나 나무를 옮기고 있었고,

하루 일을 나선 할머니들 말고도

이러저러 부녀회 형님들이 손을 보태고 있었다.

 

물꼬도 사람들이 모여 살던 20여 년 전 몇 해 표고를 길렀다.

비닐하우스 동을 마련하고,

참나무 통나무를 구해 거기 종균 구멍과 구멍 사이 15cm 간격으로 뚫고,

스티로폼이 달려있는 종균을 그 구멍에 넣었다.

이 스티로폼이 떨어지면 수분 증발이 심해 종균 활착에 어려움이 있으니

잘 챙겨야 한다.

한 손에 가는 막대기를 쥐고 꾸욱 꾸욱 누르면서 밀어 넣었다.

종균과 스티로폼이 떨어진 게 많았는데, 잘 이어 붙여 꾹, 또 꾸욱.

구멍을 많이 뚫으면 한 번에 많은 량이 나오니

버섯농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그게 나을 테고,

간격을 멀리 두면 천천히 지속적으로 버섯을 딸 수 있을 테다.

 

한 사람씩 쭈그려 앉아 줄 세운 참나무에 균을 넣었다.

펼쳐놓은 나무에 알(종균을 그리 부르기도)을 다 넣으면

남자 하나가 갈고리를 들고 작업을 끝낸 나무를 등 뒤로 빼주고, 다시 넣을 나무를 펼쳐주고.

그래도 더러 나무를 혼자 굴려야 하기도 해서

한쪽 팔이 불편한 나는 학교아저씨와 짝을 이뤄 일을 하다.

 

들일 나가면 먹는 게 더 일이라더니

마치 새참이었고, 곧 낮밥이었다.

요새는 주인이 밥을 해주는 일이 드물다.

이러쿵 저러쿵 먹는 입들이 말들 많기도 하고,

요새는 누구 밥을 해주는 일을 잘 하지 않는 시대라.

그러고 보면 물꼬만큼 죽어라 밥해 먹고 사는 곳 퍽 드물다.

내가 물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도 바로 그 밥하기일세.

면소재지에서 밥이 배달되어왔다.

그래도 주인은 생선도 구워내고 새 김치도 내고.

안주인이 먼 남도 바닷가 사람이라

어제는 고향에서 노모가 부쳐준 문어가 넘쳤더라지.

표고농이 주 종목인 이 집의 가장 큰 일 년 농사의 시작점이 바로 이즈음인.

그야말로 지나가는 고양이도 붙들어야 세워야 할 지경이었다.

미리 알린 대로 3시에

엎드려있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왔더라.

일당 준다고 안 받으실 테고...”

아무렴.

대신 막 피어나는 표고를 한 바구니 얻어왔다.

일단 냉장고 안으로.

오늘은 더는 못하겠으니.

두어 집과 나누고, 나머지는 썰어 말리리라 한다.

기둥은 잘게 찢어 말리거나 통으로 잘라두었다 국물용으로 쓰거나.

 

표고목을 세웠다 눕혔다,

더러 망치로 때려도 주면서,

차광막을 덮었다 벗겼다,

물을 주었다 두었다 또 주었다,

그렇게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며 키운 버섯은

9월께 수확을 해 공판장으로 보내 돈을 살.

여름과 가을에도 더러 자라기도 하니 자주 들여다보며 살피는.

피기 전에 따야 상품성이 있으니

딸 무렵은 또 며칠 밤낮으로 종종거릴 것이다.

종균 넣는 것쯤이야 설렁설렁하면 되지,

큰 힘 드는 일이 아니다 싶었는데 웬 걸,

밤이 되니 엉덩이에서부터 어깨며 등이며 뻐근하다.

힘들게들 농사를 짓는데,

예컨대 사과 한 알 만 원일 때 그 이익은 정작 누구에게 가는지.

일반적으로 농산물 생산지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소비지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유통구조의 중심에 도매시장법인이 있고,

가격 급등으로 인한 막대한 이윤의 최대 수혜자는 그들이다.

그야말로 자본 놀이터.

가락시장에는 농협을 포함해 여섯 개의 청과류 도매법인이 있고,

그 최대주주인 모기업은 재벌 혹은 준 재벌.

심지어 독과점. 다른 법인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

가격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경매제를 도입했다지만

시장을 안정화시키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본연의 임무는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내는 일에 묻혀버렸다.(농산물 가격과 수수로는 비례한다)

이 독과점 구조를 깨야!

이 역시 정치를 기대야 하는 일일세...

 

저녁에는 식구 하나 생일이어

여느 때처럼 생일상을 차리는 대신 바깥밥을 먹기로.

어깨를 좀 앓는 탓에.

어른 넷이 황간에 나가 저녁을 먹었네.

나선 걸음에 두어 집에 버섯을 나눠주고.

 

4월 빈들모임은

고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같이들 참가하면서

열로 마감. 안 식구들까지 더하면 열다섯.

자리를 더 내주어도 되는 느슨한 주말학교지만

앓고 있는 어깨를 좀 보호하려는 생각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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