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1.흙날. 맑음

조회 수 1104 추천 수 0 2006.02.13 12:38:00

2006.2.11.흙날. 맑음

날이 푹해 금새 녹아내리는데도
아직 발목까지 채여 있는 큰 마당 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데요, 학교 식구들.
"안에서만 있어요."
품앗이 승현이삼촌도 저녁차로 들어와 있답니다.
"심심해요."
류옥하다를 기다린다는 열택샘이지요.
젊은 할아버지는 어제 돌아들 올까 싶어 간장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답니다.

장에 나갑니다.
볕도 바람도 좋은 날입니다.
나들이 나온 할아버지와 해물을 파는 할머니가
서로에게 말을 놓습니다.
한 마을에서 자란 친구라지요.
그 오랜 세월을 아는 느낌이란 게 어떤 걸까,
갑자기 마음이 물컹하였더랍니다.
어머니랑 아이 손 붙잡고 찹쌀이며 몇 곡류를 볶아 방앗간을 갑니다.
"아침 거르지 말고 숭늉처럼 끓여 먹어라."
밤새 어깨를 앓고는 아침에야 잠이 드는 걸 본 뒤 하신 준비랍니다.
문태준님의 시 한 편을 되내었지요.


< 맨발 >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874 2008. 5.23.쇠날. 흐림 옥영경 2008-06-01 1345
873 9월 5-7일, 형길샘 머물다 옥영경 2004-09-16 1346
872 2009. 3. 7.흙날. 맑음 옥영경 2009-03-21 1346
871 2010.11. 6.흙날. 맑음 / 가을 단식 엿새째 옥영경 2010-11-16 1346
870 2010.12. 7.불날. 날 매워지다 옥영경 2010-12-27 1346
869 5월 24일 불날 옷에 튄 물도 금방 마르네요 옥영경 2005-05-27 1347
868 7월 31일 해날 한창 더위 옥영경 2005-08-01 1347
867 2008. 1.28-31.달-나무날 / 대전에서 요한이 오다 옥영경 2008-02-24 1347
866 2008. 6.18.물날. 비 옥영경 2008-07-06 1347
865 2009. 3.16.달날. 포근한 속에 옅은 황사 옥영경 2009-03-29 1347
864 143 계자 사흗날, 2011. 1.11.불날. 한 밤 굵어진 눈 옥영경 2011-01-13 1347
863 어, 빠진 10월 26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10-30 1348
862 12월 17일 쇠날 흐림 옥영경 2004-12-22 1348
861 4월 15일 쇠날 그만 눈이 부시는 봄꽃들 옥영경 2005-04-19 1348
860 4월 17일 해날 꽃 지네, 꽃이 지네 옥영경 2005-04-23 1348
859 7월 16일 흙날 꾸물꾸물 옥영경 2005-07-22 1348
858 105 계자 이틀째, 8월 2일 불날 계속 비 옥영경 2005-08-06 1348
857 115 계자 이튿날, 2007. 1. 1.달날. 흐림 옥영경 2007-01-04 1348
856 2008. 1.23.물날. 싸락눈 옥영경 2008-02-20 1348
855 3월 31일까지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2-03-07 134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