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다.

찻잎을 따러가고 싶다. 덩달아 윤나고 싱싱해질 것 같은.

남도의 차 산지에서는

곡우와 입하 사이 참새의 혓바닥 같은 어린 찻잎으로 차를 만든다. 세작이라.

채엽해서 살청(덖음)하고 유념(비비기)하고 건조하고.

말차와 같이 순한 맛을 내야하는 경우는 가열살청이 아니라 증기살청으로.

곡우 앞으로는 우전을 덖는다.

우전으로 봄을 들이고

세작으로 봄(사이)을 걷는다.

갓 만들어 보내온, 녹차를 달이는 곡우의 오후.

 

아침뜨락에 자귀나무 한 그루도 서 있으면 좋겠다.

쉬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돈으로는 쉽다.

올 봄밭 한 곳에서 자귀나무 묘목 세 주가 왔다.

몇 년 자란 걸 사야지 하고 있던 참인데,

이미 꽃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 묘목도 자라 꽃을 피우는 날을 맞을 테다.

지느러미길 들머리 한쪽에 임시로 심어두었다.

살아남아 자라서 마침내 아침뜨락에 자리 잡는 날이 오기를.

그럴 일이 이제는 좀체 없다 싶은데,

땅을 갖는다면 맨 먼저 나무를 심으리라.

삼거리밭에는 어제 농기계로 했던,

이랑에 덮은 비닐 가로 흙을 못다 덮었던 곳 정리.

 

동영상이 왔다.

다섯 살짜리 생이 담겼다.

팔십을 산 사람은 여든 삶의 생을 가졌고

다섯 살 아이는 다섯 해의 생을 가졌다.

팔십도 온 생이고 다섯도 온 생이다.

5.18 유족인 그 할머니 당신은 이제 장성한 두 아들네 손주 보는 일로

인구절벽의 대한민국에 기여하고 사신다.

요새 손주 자랑 하고 싶으면 밥부터 사야 된다던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라는 손주들이 마냥 예쁘다.

하지만 타인들이 그만큼 예뻐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저마다 삶도 매우 바쁘거니와

넘의 손주까지 이뻐하기에는 내 손주 예쁜 얘기에도 그러니까.

마침 당신이 식사 초대를 했던 날

조심스러워도 하며 손주 걸음마 무렵 동영상을 보여주셨더랬다.

아이는 식탁의자에 오르기 위해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했다.

미끄러지고, 다시 오르고, 매달리고 버둥거리다 다시 떨어지고,

반쯤 올라갔다 다시 미끄러지고, 간당거리다 용을 쓰며 끝내 올라갔다.

할머니는 좌절감이 들 때마다 그 영상으로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 영상을 보고 내게도 보내 달라 했더랬던.

어른이 된 이 몸은 그런 기적을 통해 여기 이르렀다. 장하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살아오느라 애썼다. 고맙다. 다음 걸음도 그렇게!

식구들하고도 공유했다.

엄청 야물어!

우리 아들 못잖음.

내일이 궁금해지는 아이.

내가 예뻐라 하니

더 챙겨서 보내오심:)’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겠지만

별반 한 일이 없다.

밥이나 주고

하지만 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온 힘을 썼다.

자라고 나니 어미가 할 일이 더욱 없는데,

그를 보다가

혹 먼저 산 사람의 말이 위로나 방향이 될 수도 있을까 싶어 몇 줄 글을 보내고는 한다.

최근에 보낸 문자를 공개해도 되느냐고 오늘 아들이 물어왔다.

이미 나를 떠난 것. 내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도움이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다면야!

그 행간을 저야 알지만, 우리에게는 그간의 교통이 있으니,

다른 이에게도 그리 쓰일 수 있을랑가

오늘은 오직 오늘을 모시고,

내일도 오늘을 모시고,

모레도 오늘을 모시라는 말도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만을 말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싸우라고,

그리고 결국 이기라는 말도 해주고팠는데

갈수록 어른이라고 할 일이 참 없다. 그저 내 오늘을 잘 모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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