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3.불날. 맑음

조회 수 1394 추천 수 0 2006.05.25 21:24:00

2006.5.23.불날. 맑음

아침에 학교를 이리저리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한참을 나고 자라는 것들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볕이 무서운 여름 초입의 이곳을 두 달이나 떠나 있을 거니까요.
밭딸기가 벌써 익고 있습니다.
잎새에 숨었으니 이제야 눈에 든 게지요.
내일쯤 점심엔 아이들과 후식으로 따 먹어야겠습니다.

생활과학의 이번학기 마지막은 산더덕을 캐러 숲에 들어
나무 그늘들 사이를 더듬었지요.
온몸에서 짙은 향기를 내는 그들입니다.
젊은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한번 잘 익혀두니 흩어져 심마니들마냥 더덕을 찾습니다.
향기가 우리를 끌기도 하고 감각이 생기기도 하고...
"여러해살이풀이란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작년에 보았던 그 자리에 다시 덩굴로 오르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더덕이 나무를 타고 오른 걸 보며 '덩굴성'이란 것도 이해합니다.
"이 잎도 돌려나기일까요?"
처음엔 그렇다고 말하더니 자세히 보고는 마주나기라네요.
뿌리가 여러 해 묵어서 아주 굵고 울퉁불퉁하게 생긴 것도 있습니다.
오늘 한 끼 밥상에 올릴 수 있을 만치 캐서 내려왔지요.
마지막으로 자기가 궁금한 여러 물음을 '내가 알아가고 싶은 것들'로 기록해두고
차차 알아가 보자 제안하며 이번 봄학기 집중과목을 마칩니다.

국화샘이 제 미국행에 선물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남편이 신세진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면 좋겠다고,
당신이 줄 수 있는 건 겨우 이거라며
포도를 그린 그림 세 장을 봉투 하나 하나마다 준비해주셨습니다.
저는 도대체가 어려운 일들입니다.
어른은 뭐가 달라도 어른인 게지요.
고맙습니다.

단소시간은 재미난 구경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종류가 많아요?"
당피리도 새피리도 보고 소리도 들어봅니다.
태형소도 불어 보여주시고 북한대피리로 꺼내 곡을 연주해주셨지요.
김샘이 갖고 계신 여러 악기들을 실어와 아이들 눈과 귀를 넓혀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무거움을 다른 사람이 정리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인간 존재가 슬퍼 가눌 길 없더니 급기야 몸져누웠고
다시 사는 일에 마음을 내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우리 사는 일,
과거 때문에 괴롭고 미래 때문에 불안하지요.
그러면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걸 깨친다면 괴로울 일도 두려울 일도 없겠습니다.
요즘 마음이 밝아진 까닭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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