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5.나무날. 해 숨기도 하고

조회 수 1512 추천 수 0 2006.05.27 23:24:00

2006.5.25.나무날. 해 숨기도 하고

오늘 내일 모내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지난 계자 때 모내기를 한 데다
마침 학기 갈무리 주간이기도 하여(낼은 산오름이 있고) 빠지기로 하였지요.
마을 식구 종훈네꺼정 열마지기라
이번은 이앙기의 도움도 받을 량이랍니다.
어차피 듬성듬성한 데며 가장자리는 사람 손이 다 닿아야하니
이틀이 다 걸린다 계획합니다.

참, 어제 손님 세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이은영엄마의 이웃들로
광명 YMCA쪽의 생협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라지요.
농사부의 열택샘은 물꼬의 그 많은 감자며들을 팔 수 있는 길이 되겠다고
아주 신이 났더랍니다.

어른들은 다 논으로 가고
아이들과 마당의 풀을 뽑았습니다.
평화만들기!
구역 구역을 나누어 네 패가 풀을 뽑아나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나라와 나라의 싸움을 없애고 평화를 만들어가듯
놀이삼아 뽑으니 저마다 재미가 납니다.
만나는 지렁이들을 모아 콩밭으로 옮겨주기도 하였지요.
담에 낚시 갈 땐 예서 지렁이를 잡아가잡니다.
평화에 일조를 한 것 같아 기쁘다는 아이들입니다.
마당 한 켠이 훤합니다.

봄학기 마지막 '두레상'이 있었습니다.
포도밭과 논밭 소식, 텃밭이야기가 있었고
달골에선 여전히 손이 필요한 공사뒤끝과 새로 생긴 텃밭, 꽃밭소식이 전해졌지요.
학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동체이니
봄학기 갈무리 즈음이라 정리하는 마음들도 나눕니다.
날이 빨리 간다지요, 누구나.
긴 우리 생 또한 그리 성큼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재미들을 전했고,
어른들은 대해리에서 사는 단상들을 나누었지요.
엊저녁 모내기를 도우러온 이광열아빠는
여름을 맞으며 물꼬 삶에 천천히 적응되어간다 합니다.
홍정희 엄마는, 이 밥 먹으며 사는데도 모르고 살았구나,
모내기를 하며 내 생애에서 이런 시간이 있어 고마웠다 합니다.
이금제엄마는 배워가며 사는 생활에 대한 고마움과
신나는 아이들이 주는 흐뭇함을 전했지요.
곽보원엄마는
관계를 갖고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풀려고 애쓰는 날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었습니다.
정운오아빠는 그러데요,
"물꼬 오니 시간이 잘 가요.
아이들 크는 모습에서 보람 있고,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부딪히고 산에서 살고 싶었고 그리도 살아봤는데,
(이제) 공동체에 걸쳐있으며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합니다."라고.
민들레 건도 이번 학기를 말하자면 피해갈 수 없는 일이지요,
상범샘은 타산지석을 말하며 그 일이 물꼬를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줄 거라 합니다.
또, 물꼬는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큰 장점인데,
일을 하는 것이 내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만,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이들이 먹을 거라 생각하며 힘을 내게 된다지요.
사람들이 와서 마을도 좋고, 농사거리들이 잘 커서 기쁘다는 젊은 할아버지,
조카가 잘 크니 바랄 나위 없다는 고모,
그리고 이은영 엄마가 말을 이었습니다.
"포도밭 감자밭 콩밭들, 사람 손이 한 걸 보며 뿌듯하고 기대됐습니다."
그 안에 '내'가 있어 좋다지요.
희정샘은
아이들은 서로를 빨리 이해하는 시간인데 어른들은 이제야 얼굴이 튼 듯하다며
조급해하지 않고 잘 알아갔으면,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6-7월 움직임을 다시 확인하며 자리를 정리했지요.

오늘 '작은 의식' 하나에 아이들을 초대했습니다.
고래방 뒤란 우물 앞에서 불을 피웠지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썼던
제 젊은 날의 일기장 꾸러미가 불려나갔습니다.
마흔 여권이 되는 대학노트였지요.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의 첫 머리쯤 되는 물건이겠습니다.
"글씨를 너무 잘 쓰셨어요."
그러게요, 그 즈음은 어쩜 그리도 또박또박 썼더랍니까.
가장 소중한 것도 사실은 별 게 아닐 수도 있단다,
어떤 시기들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지점들이 있을 거다,
새로운 나이대를 넘어가려는 한 때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요.
그 갈피에서 아, 글쎄, 학교 다닐 적의 수년의 통지표 성적표 꾸러미도 나옵니다.
"1등 하셨어요!"
하하, 저도 공부 좀 하던 때 있었습니다요.
한 권씩 꺼내 후르르 훑고 주면 아이들이 찢어 불에 던졌습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숱한 사람들과
정치 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읽었던 책에 대한 단상들입니다.
여행을 다닌 기록들, 영화와 연극 춤 같은 공연을 보러 다닌 표들도 나오고...
전화 연락도 쉽지 않았던 그 때,
이 사람 저 사람이 같이 술을 마시던 카페며 책방에 남겨주었던 메모들도 나왔지요.
"내 젊은 날의 한 켠, 안녕!"
손을 오래 오래 흔들어줍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지금 무슨 큰 의미가 있기는 어렵겠으나
이 진지함 이 눈빛 이 느낌들이 살아가는 어느 날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 지요.
나현이는 제 젊은 날이 떠난 재위에 같이 물을 뿌릴 때까지 남아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또 성큼 한 발짝을 옮겨봅니다,
그게 여태 살았던 삶과 다른 날이 될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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