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30.달날. 맑음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2006.10.31 12:16:00

2006.10.30.달날. 맑음


아이들이 시를 읽고 외고 그리고 썼습니다.
시만큼 말이 지닌 어감을 잘 살려내는 장르도 없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모국어를 살려내는 것은
오늘날 중심화 되어가는 지구 위의 삶에서
탈중심화 지역화로 가는 한 길이기도 하겠습니다.
또한, 모국어를 지켜낸다는 것은 민족주의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뿌리와 줄기의 혼을 지켜나가는 일이겠습니다.
이미 시어 같은 모국어로
아이들은 가을날의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흔히 동시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쓴 시나
그 어른들의 시를 흉내낸 시 쓰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 순간들을 옮기고 있었지요.

구미를 다녀오니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밖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이 늦은 식구를 맞아줍니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한 한데모임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시를 써서 좋았다 하고 춤이 재밌었다 하고
읍내에서 돌아올 때 암벽타기도 했다 합니다.
학교에 남은 류옥하다는
돌탑 앞에 있던 고양이 무덤이 황폐해져서 2년 만에 보수를 해서 기뻤다네요.
지금 아이들 책 세계는 탐정소설류들입니다.
코난 도일의 작품이며는 재미뿐만 아니라
명작으로 불리는 만큼 문학적 성과로서도 뭐라 덧붙일 말이 필요치 않겠지요.
그런데 기록에 없던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건의사항’.
수돗물을 잘 잠그자,
남자들은 변기뚜껑을 올리고 오줌 누자,
화장실 불을 끄고 문 닫고 신발정리를 하자고 써놓았네요.
일상에 필요한 것들도 스스로들 잘 자리를 잡아갑니다.
대견들 합니다.
11월엔 호숫가나무가 물날 저녁에서 쇠날 아침으로 옮겨갔으니
그 시간을 역시 아이들끼리 꾸리는 한데모임으로 두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자꾸 스스로들 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게지요.

봄도 아닌데 봄날을 노래한 시 한 편이 마음에 서성입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나무는 또 그렇게 이파리를 내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살 수도 없는 짓이라고
꽃들은 또 그렇게 지는 것이었지만
날 때부터
상한 이마 달고 나온
내 뜰의 이파리들아,

어디 흘러갈
낮은 데도 없는 봄밤에는
열에 겨운 목숨들의 꽃장이 선다”

; 이안의 ‘봄날-꽃場’ 가운데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듣던 음악들이
죽어도 좋을 만치 가슴을 울리더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자살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더니...
가을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다 가을 탓인가 봅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온 몸이 다 부신 날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396 7월 20일, 초복 옥영경 2004-07-28 1246
1395 2008. 4. 6.해날. 맑다 한밤중 비 옥영경 2008-04-20 1246
1394 2008. 5.24.흙날. 맑음 옥영경 2008-06-01 1246
1393 2009. 4.23.나무날. 바람 많은 맑은 날 옥영경 2009-05-07 1246
1392 2012. 4.17.불날. 맑음 옥영경 2012-04-23 1246
1391 7월 14일 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5-07-20 1247
1390 7월 26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8-01 1247
1389 9월 26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5-09-27 1247
1388 2005.11.2.물날.맑음 / 밥상 옥영경 2005-11-04 1247
1387 2007.10.26.쇠날. 맑음 옥영경 2007-11-06 1247
1386 2008. 5.20.불날. 맑음 옥영경 2008-05-31 1247
1385 11월 11일 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4-11-22 1248
1384 5월 13일 쇠날 씻겨서 신선한 옥영경 2005-05-16 1248
1383 107 계자, 8월 15-20일, 아이들 아이들 옥영경 2005-09-08 1248
1382 2005.12.13.불날.맑음 / 노천가마 옥영경 2005-12-16 1248
1381 2006.4.21.쇠날. 두 돌잔치에 그대를 맞습니다! 옥영경 2006-04-26 1248
1380 2011.12. 9.쇠날. 눈발 옥영경 2011-12-20 1248
1379 109 계자 닫는 날, 2006.1.25.물날. 맑음 옥영경 2006-01-31 1249
1378 2006. 9.22.쇠날.맑음 옥영경 2006-09-26 1249
1377 2006. 6. 6.물날. 마른 비 지나고 바람 지나고 옥영경 2007-06-22 124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