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3.달날. 흐림

조회 수 1362 추천 수 0 2006.11.16 09:32:00

2006.11.13.달날. 흐림


지난 주 어느 날부터
가마솥방에 있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도학교에서 부르는 노래들도 잘 쓰고 싶었지요.
“엄-마 아-빠 손목을 잡고...”
“엄-마 아-빠 손목을 잡고...”
제 목소리를 내느라 바쁘더니
오늘은 조화로움에 마음들을 쓰며 돌림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잎차를 달여낸 찻상에서 주말에 지낸 얘기도 하고,
한 주 맞이 준비인 ‘첫만남’도 하였지요.

우리말글 시간엔 아이들 일기에서 재료를 찾아
틀리기 쉬운 글자들을 가지고 맞춤법을 익혔고,
서둘러 읍내에 나갔네요.
“춤이 정말 재밌었어요.”
창욱이랑 승찬입니다.
“용두공원에서 본 등나무 그림이 예뻤어요.”
나현이랑 동희였지요.
“춤이 다음 주가 기대돼요.”
령이랑 류옥하다네요.
용두공원에서 놀다 오는 것도 참말 신났다지요.
아이들에게 새로운 읍내놀이터 하나가 생긴 겁니다.

아침 저녁, 아이들에게 읽어주거나 혹은 들려주는 책들의 주인공은
제게도 용기를 줍니다.
버넷이 쓴 장편의 주인공이 닥친 어려움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는 게
아이들 못지않게 감동적이며,
로널드 달의 장편에 나오는 어느 선생님의 삶은
아직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 제 삶을 살펴보게 하지요.
의자용과 탁자용으로 뒤집어놓은 나무상자들이 쓰이는 거실,
프라이머스 풍로와 손잡이 달린 스튜 냄비 하나가 있는
부엌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의 수도꼭지도 없는 물받이대,
방세로 10펜스를 내고, 그 나머지로 풍로와 램프의 연료인 파라핀유를 사고,
우유와 차 그리고 빵과 마가린 약간을 사는 생활...
“그게 내가 필요한 전부였다.”
생활의 불편보다 악마 같은 이를 벗어난 자유가 더 소중했던 그는
진정 삶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제게 다시 생각케 했지요.
너무나 작아서 인형의 집 같은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는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읊조립니다.

“화롯가 동화의 나라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주문에 걸려 잠에 빠진 내 아가야,
절대로, 절대로,
두려워도, 믿지도 마라,
하얀 양가죽을 쓴 늑대일랑은.
거칠게 맘대로 뛰어 달리고 재잘재잘대는
내 아가야, 내 아가야,
이슬이 살포시 젖은 시간에
나뭇잎이 무성한 야수의 굴에서 나와
장밋빛 숲 오두막에서 자는
너의 심장을 노리는 늑대일랑은.”

학교 일을 그만 두고 실업자 수당을 받으면
지금보다 훨씬 형편이 나을 거라는 방문자의 말에 그 선생님이 한 대답은
제 가슴을 오래 둥둥거리게도 했더이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난 가르치는 일을 사랑해.”
그래요,
물꼬를 사랑하지요.
이 물꼬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지독하게 사랑하지요.
세상 무슨 일이 이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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